기업이 신시장 진출을 결정한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신사업 관련 경험이 풍부한 외부 인재 영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술 경쟁에 이기려면 연구개발(R&D)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좋은 장비도 사들여야 하지만 단기간에 선두주자들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이런 때 숙련된 전문가를 영입하면 장기간 축적한 노하우와 역량을 단숨에 확보할 수 있다. 훌륭한 인재는 히든카드로 작용한다.
문제는 시장 변화와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신기술·신제품 유통기한이 점점 짧아진다. 몇 년을 투자해서 학위를 받아도 기술 트렌드가 금방 바뀌기 때문에 정작 실무 현장에서 써먹기 어려운 지식이 된다. 최근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분야에서 인재 유치에 목마른 기업들이 사내 교육 과정을 개설해서 전문가를 직접 길러내고 있다. 지식 유통 가속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이처럼 기술 인재 수요는 급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재 육성에 얼마나 준비가 돼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유례없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경쟁력 있는 우수 인재를 적기에 공급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4명에 불과하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제조업 노동자의 평균 연령도 1999년 35.5세에서 2019년 42.1세로 20년 만에 6.6세나 상승했다. 미래 기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데 이를 주도할 잠재적 인력 규모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9월 29일 정부가 발표한 '수요기반 기술인재 육성전략'은 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시점에 적절한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략은 과거 인재 양성 정책들과 두 가지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첫째 선제 수요 전망으로 능동적 대책 수립이 가능해졌다.
산업계 수요를 고려해 교육 과정을 바꾸고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는 데까지는 필연적으로 시차가 발생한다. 이번에는 이 시차를 줄이기 위해 기술 변화상을 미리 전망하고 반영했다. 한국공학한림원·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 소속 석학들이 직접 참여해 나노 소재, 양자 컴퓨팅, 빅데이터 등 10대 첨단 기술을 발굴했다. 오는 2030년까지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기술 인재 수요까지 도출할 수 있었다.
둘째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안으로 산·학 협력 생태계 고도화를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에서는 기업과 대학 모두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만큼 서로를 생존에 필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 대표 사례가 기업 재직 전문가의 교원 채용이나 중견기업 계약학과 확대 등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대학에 실증·인증 인프라를 구축해서 지역 기업에 개방하는 '대학혁신지원센터(UIC)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연구 장비 공유는 기업-대학 간 연대 강화에 필수 불가결한 아이디어여서 기대가 크다.
지금은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경제·외교·안보 이슈와 긴밀히 연계되는 시대다. 좋은 기술 인재를 많이 길러내 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산업 정책 수준을 넘어 종합적·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국가 차원의 과제가 됐다. 인적 자원의 질을 높여 나가면 글로벌 기술 주도권 다툼에서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유재무환(有材無患). 유능한 기술 인재를 갖춘다면 미래 준비의 절반은 끝난 것이나 같다. 앞으로 '우수한 기술 인재 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대학·기업이 '원 팀'을 이뤄 긴밀히 협력하는 모습이 무척 기대된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ycseok@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