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이동 경험을 실현하겠습니다.”
지난 1년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과감한 인수합병(M&A)과 대규모 투자 발표로 승부사 기질을 보여줬다. 취임 직후 미래 성장을 위해 현대차그룹 총투자를 연간 20조원 규모로 확대하고, 향후 5년간 총 100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체질 개선과 사업 구조 개편도 더 빨라졌다.
정 회장은 선제 투자를 통해 전동화 시장 확대와 자율주행차 상용화, 수소 산업 생태계 구축,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 확장 등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리더십 확보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취임 전날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기공식에서 “모빌리티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인간 중심 밸류체인 혁신을 바탕으로 고객 삶의 질을 높여 나가겠다”면서 “이를 통해 구현할 혁신이 미래를 변화시키고 인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협업과 투자…정 회장의 '게임 체인저' 전략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서 게임 체인저로 자리 잡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전략은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2018년부터 구체화 됐다.
글로벌 기업은 물론 다양한 스타트업 등 경쟁력 있는 기업과 잇달아 손잡으며 적극적 협업과 투자 물꼬를 텄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호출 업체 그랩에 2억7500만달러를 투자했고, 2019년 3월 인도의 우버로 불리는 올라에 3억달러를 투자했다. 2019년 5월 크로아티아 고성능 전기차 업체 리막, 같은 해 9월 유럽 최대 전기차 초고속 충전 인프라 구축 업체 아이오니티에 전략적 투자를 결정하며 전기차 부문에서 공격 투자를 단행했다.
작년 1월에는 우버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 추진을 위한 협력 계약을 맺었고, 3월 자율주행 기술 확보를 위해 2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앱티브와 합작법인 모셔널을 세웠다. 완성차 제조기업에서 벗어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해 시장 판도를 바꾸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수소 사업 선두 업체 지위도 공고히 했다. 2018년 12월 충북 충주 현대모비스 수소연료전지공장 신축 공사에서 2030년까지 국내에서 수소전기차를 연간 50만대를 생산하겠다는 중장기 수소전기차 로드맵을 제시했다.
2019년 4월 스위스 수소 에너지 기업 H2E와 합작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세계 최초로 양산한 대형 수소전기트럭을 유럽 현지 고객에게 인도하며 유럽 친환경 상용차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2030년까지 유럽 시장에 2만5000대 이상 수소전기트럭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소전기차를 수출하며 수소 사업 영향력을 확대했다.
◇자율주행 택시 현실화…로보틱스 상용화도 초읽기
올해 8월 말 현대차는 아이오닉5를 기반으로 개발한 로보택시를 처음 공개했다. 정 회장이 설립을 주도한 현대차와 미국 앱티브의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의 첫 성과물이다.
현대차그룹이 아이오닉5 로보택시에 적용한 자율주행 기술은 미국 자동차공학회(SAE) 기준 레벨4 수준에 해당한다. 레벨4는 차량의 자동화된 시스템이 상황을 인지 및 판단해 운전하고 비상시에도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이오닉5 로보택시는 모셔널의 첫 상업용 완전 무인 자율주행 차량이다. 2023년 차량 공유 업체인 리프트를 통해 미국에서 승객을 원하는 지점까지 이동시켜주는 라이드 헤일링 서비스에 투입 예정이다.
올해 6월 정 회장은 미국 출장길에 올라 보스턴에 위치한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 본사를 찾았다. 모셔널 경영진과 기술 개발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고 차세대 자율주행 기술 개발 현장을 둘러보고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모셔널은 현대차그룹과 앱티브가 5대 5 비율로 지분 투자해 설립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사의 설계, 개발, 제조 역량과 모셔널의 자율주행 솔루션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로보택시와 차량 공유 서비스기업과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공급할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셔널은 지난해 미국 네바다주에서 업계 최초로 무인 자율주행 테스트 면허를 획득했으며, 2023년 리프트와 함께 무인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로보택시 서비스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모셔널은 현대차 전용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에 차세대 자율주행 플랫폼을 적용, 현재 미국 시험도로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이후 첫 번째 협력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산업현장 위험을 감지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이다. 이 로봇은 기아 오토랜드 광명 내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에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의 인공지능(AI) 기반 소프트웨어(SW)를 탑재한 AI 프로세싱 서비스 유닛을 접목해 완성했다. 4족 보행 로봇 스팟은 산업현장에서 이동하기 힘든 좁은 공간과 계단 등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총 11억달러 가치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인수했다. 현대차(30%)와 현대모비스(20%), 현대글로비스(10%)가 지분 인수에 공동 참여했고, 정 회장도 사재 2490억원을 투자해 지분 20%를 확보했다. 올해 미국 출장에서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 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그룹 내 자체 로봇 개발 역량 향상은 물론 자율주행차, UAM, 스마트 팩토리 기술과 시너지도 적극 도모할 계획이다. 고령화, 언택트로 대표되는 글로벌 메가트렌드가 진행 중인 가운데 안전, 경비, 보건과 로봇을 활용한 재난 구조 등 공공 영역에서 역할도 기대를 모은다.
정 회장은 “사람이 해야 할 어려운 일을 로봇이 많이 대체하게 될 것이고 로봇 정비 프로그래밍 엔지니어 등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8조원 투자…전기차 리더십 지킨다
미국 대규모 투자 결정은 정 회장의 전기차 리더십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올해 5월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5년간 미국에 약 8조원 규모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그린뉴딜과 바이 아메리칸 전략, 이와 연계한 전기차 정책 등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생산과 생산 설비 확충을 비롯해 수소, 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총 74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현대차와 기아 모두 전기차 모델의 현지 생산을 추진하며, 현대차가 먼저 내년 중 전기차 현지 생산을 시작한다.
정 회장의 과감한 투자 전략은 미국 내 전기차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시장 전망과 맞닿아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2025년 240만대, 2030년 480만대, 2035년 800만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