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된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국내에서 270만건 이상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한시적 허용 조치 이후 비대면 진료 플랫폼도 10개 이상 생겨난 것으로 파악된다. 그 사이 의료계에서 우려했던 의료 사고나 의료기관 쏠림 현상도 발생하지 않은데다 환자 편의도 높였다는 평가다.
이르면 내달 초 시작되는 단계적 일상회복, 이른바 '위드(with) 코로나' 시대 의료 체계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으로 재택치료가 확대된다. 이에 따라 기존 대면 진료 중심 의료 체계의 공백을 메꿔줄 수단으로 비대면 진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정부, 의료계, 약사회, 산업계, 소비자단체 등 이해관계자간 거버넌스를 통해 부작용을 방지할 비대면 진료와 처방의약품 배송 가이드라인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1년 8개월간 비대면 진료 270만건 '호응'…의료사고 우려 불식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시적 전화 상담·처방이 허용된 지난해 2월 24일부터 올해 9월 5일까지 1만1936개 의료기관에서 276만건의 비대면 진료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환자는 80세 이상(13.6%)이 가장 많았다. 질환별로는 고혈압(18.6%)·당뇨(5.6%) 환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해 감염병 위험에 취약한 노년층과 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높은 효용을 확인했다. 자가격리자, 직장인, 워킹맘 등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순기능이 부각되고 국민 요구도 확인되면서 반대 일색이던 의료계에서도 일부 우호 여론이 나온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달 국정감사에서 “비대면 진료가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건강증진에 보충적인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점이 문제로 드러났다고 보고 있지는 않으며 소비자보호원 등에 접수된 부작용 사례도 없었다”고 긍정 평가했다.
한편에서는 감염 위험 최소화라는 비대면 진료 원래 취지를 벗어나 식욕억제제, 수면제 같은 향정신성의약품이나 발기부전 치료제, 탈모치료제 등 비급여 처방조제가 과다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대업 대한약사회장은 “(비대면 진료를 통해)졸피뎀과 같은 수면제, 마약류 의약품, 발기부전 치료제, 식욕억제제 등을 의약품 오남용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국민 건강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비대면 진료, 법·제도 '사각지대'…산업계 제도화 촉구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비대면 진료에 관한 법적 근거는 지난해 12월 개정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 이상일 때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유일하다. 현행 약사법도 택배 배송을 통한 의약품 판매는 허용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의사의 비대면 진료 후 약사와 환자 간 협의 방식으로 택배 등을 통한 조제약 배달이 한시적으로 가능하다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으로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나 의약품 배송 서비스에 대한 별도 승인이나 검증 절차도 없다. 권 장관은 “지금 환자와 약사간의 협의된 방식으로 배송되는 것은 허용하고 있으며 이 경우에 특별히 승인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비대면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비급여 처방 의약품 내역에 대해 통계도 전무한 실정이다. 감염병 위기 단계가 하향 조정될 경우 언제든 한시적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는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지난해 국감에서 복지부가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비대면 진료 제도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재까지 움직임은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당초 비대면 진료 취지를 살리고 의약품 오남용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마약류 등 처방을 제한하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업계도 비대면 진료 서비스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국감 참고인으로 출석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는 “민간에서 비대면 진료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하되 정부에서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규정과 감독체계를 마련한다면 환자들이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면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제도권으로”…의료법 개정안 속속 발의
이런 가운데 비대면 진료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한 의료법 개정 움직임도 탄력을 받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정해 고혈압, 당뇨, 부정맥 등 기저질환 재진환자에 한해 건강 상태를 원격으로 관리하는 원격모니터링의 법적 근거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최혜영 의원도 이달 18일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필요한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의사와 환자 간 진단, 처방에 대해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를 신설하고, 비대면 진료 대상을 섬·벽지거주자, 교정시설 수용자·군인, 대리처방자 등으로 명확히 했다. 정부 역시 만성질환을 중심으로 의원급으로 범위를 좁혀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업계는 비대면 진료 대상을 보다 넓혀야한다는 입장이다. 장지호(닥터나우 이사)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원격 모니터링, 비대면 진료 법안이 발의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면서도 “개정안은 도서지역, 장애인 등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매우 극단적인 수요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비대면 진료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시에 거주하는 보편적 환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환자의 경중'을 나누는 것이 어떠한 환자에게는 차별이 될 수 있지는 않은지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며 “재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가능할 경우 초진 의료기관이 비대면 야간진료를 운영할 확률이 매우 낮아 현재 비대면 진료의 핵심 수요라고 할 수 있는 야간진료 환자가 다시 응급실로 가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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