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기업 공급망 관련 자료 제출 요구에 한 목소리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국가 핵심 산업인 반도체 관련 기밀자료가 유출되면 한국 산업계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 같은 우리 측 입장을 미국에 지속 전달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 종합감사에서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신재생에너지 등 주요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여·야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자료 제출 요구에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정부를 질타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 정부는 (자료 제출)에 자발적으로 응하지 않는 기업에 '데이터를 요구하는 수단'을 꺼낼 것이라는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면서 “대만 정부와 TSMC는 이 같은 미국 요구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우리 정부는 확실한 입장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반도체 양사(삼성전자·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들과 직접 개별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다각적으로 기업들과 소통하고 있다”면서 “부당하거나 산업에 부담이 되는 자료 요구가 지속되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정부에 한층 능동적으로 사태에 개입할 것을 촉구했다. 기업에 '비빌 언덕'이 돼야 할 정부가 오히려 모든 상황을 기업에 맡겨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 의원은 “기업이 (정부 개입 없이)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미국이 요구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국유화 시킬 법을 적용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 장관은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미국의 조치를 한국을 비롯한 동맹과 협력하는 한편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하며 '부당한 요구'라고 못박았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 대만, 독일 등의 반도체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의원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삼성전자나 대만 TSMC의 고객사·기술에 관련된 민감 정보가 미국으로 간다면 중국 상황을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번 미국의 부당한 자료 요구는 시작에 불과하다. 향후 배터리까지 옮겨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 장관은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기술 공급망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기술과 공급능력, 핵심인력 관리·양성은 물론 동맹국 간 협력을 통한 윈윈도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종합해 대응 기조를 짜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주요 산업부 정책 방향에 관한 질의와 지적도 쏟아졌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확정된 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산업계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데 초첨을 맞췄다. 윤 의원은 “IAEA도 탄소중립을 위한 대안은 원전이라고 한다”면서 “유럽도 원전비율을 10%에서 20%로, 일본도 2030년까지 3배 늘릴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만 의원은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대한 산업부 입장을 물었다. 산업부의 에너지, 환경부의 기후 부문을 하나로 묶어 에너지 대전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장관은 “탄소중립과 같은 새로운 어젠다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과거보다 추가해서 산업과 에너지가 서로 상생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면서도 “부서신설에 대해 검토한 바 없으며 뭔가를 말씀드릴 입장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