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안보·기술통상 지상좌담회]경제안보 시대, '기술통상'으로 국부 창출해야

#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반도체, 5세대(G) 이동통신 등 첨단산업 분야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국 중심주의가 확대되고, 세계 주요국 기술보호 조치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급기야 미국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의 영업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반도체 핵심 공급망을 파악하고, 미국 내에서도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려는 포석이다. 또 일본 수출규제, 중국의 요소수 통관 검사, 중국의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등 세계 공급망을 뒤흔드는 사건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와 '안보'가 각각 독립적인 영역으로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와 안보 경계가 흐려지고 안보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경제안보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과 국익 극대화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전개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했다.

전자신문은 세계 기술패권 경쟁 심화와 경제안보 확대에 따라 민간 전문가와 정부 정책 당국자에게 기술패권 경쟁 시대 무역안보 중요성과 대외 여건 진단, 정책 제언을 듣는 특별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서면 방식으로 진행했다.

[참석자(가나다 순)]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박희재 산업기술보호협회장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최근 코로나 팬데믹, 세계 기술패권 경쟁,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둘러싼 대외 환경 변화에 대해 평가해 달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여한구(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중간 기술패권 경쟁, 자국중심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우리를 둘러싼 대외환경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무엇보다 차량용 반도체 등 크고 작은 세계 공급망 교란이 상시화하면서 국제 분업 체계 한계를 노출했고, 안정적 공급망 확보 중요성도 증대됐다. 반도체, 인공지능(AI), 6세대(G) 이동통신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중간 기술 주도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안보와 경제 경계선도 모호해져, 산업·기술·안보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자국 위주 공급망 구축을 위한 산업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동시에 우방국간 기술 협력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은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 육성과 공급망 구축을 위해 보조금 지원 등 관련 제도를 속속히 마련하는 한편 수출통제·투자심사·기술보호 등 무역안보 관련한 법과 제도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공급망에서 주도적 위치를 선점해 안정적인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신뢰할만한 파트너로서 유사 입장국간 공조로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부창출형 통상' 필요성이 부각됐다.

◇김양희(국립외교원 부장)=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요체는 미국 첨단신흥 기술의 탈중국화다. 이는 강력한 산업정책과 동맹 및 우방국과의 다층 협력이라는 양면적 성격을 띤다. 동맹 중시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계기로 두드러지는 이 현상은 '보호주의 진영화'로 정의한다. 이에 따른 미국 공급망 재편 전략은 '신뢰가치사슬(TVC:Trusted Value Chain)'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이 현상을 기존의 '글로벌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이나 '지역가치사슬(RVC:Regional Value Chain)'과 같은 개념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최근 미국은 TVC 협력 대상은 '두 개의 선'인 한국과 일본에서 출발해 점차 '면'인 쿼드(QUAD), G7, 미국·유럽연합(EU) 무역기술위원회(TTC), G14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TVC가 구축되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참여국 간 신뢰 구축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동맹복원 구호를 내건 바이든 정부도 전임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커스(AUKUS:미국과 영국의 새 안보동맹)' 출범 계기 미국 서구 우방들이 다투고 있고, 한일 갈등도 엄존한다. 둘째, 경제 논리와 안보 논리 간 균형 도모도 쉽지 않다. 경제안보를 명분으로 한 과도한 정부 개입은 산업정책의 폐해를 낳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경제안보를 이유로 자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영업비밀을 요구한 것은 시장 논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영업비밀 침해를 대표적인 불공정한 무역행위라며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내 영업비밀 침해를 강력히 규제했다. 그런 미국의 지금 행태는 중국의 '데자뷰'로 보인다. 그러나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일단락되기까지 미국 주도 TVC 구축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금융경제연구소장=바이든 정부 들어 미·중 갈등이 무역에서 기술전쟁, 공급망 전쟁으로 확연히 전환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기술 봉쇄와 아울러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에서 경제동맹전략은 바로 중국에 대한 공급망 차단 전략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한국은 미국의 쿼드 동맹에서 빠져 미국의 2류 동맹으로 전락했다고 하는 비관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중의 2차 전쟁에서 한국 위상은 오히려 더 높아진 것으로 봐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21%와 배터리 시장에서 35%를 공급하는 세계 2위인 한국은 오히려 미국 경제동맹의 중요 축으로 부상하게 됐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얻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 반도체의 63%, 배터리의 45%를 구매하는 세계 최대시장으로 부상한 중국 시장에서 우리 위치를 다시 설정해야 하는 고민도 생겼다. 당장 10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장비를 중국으로 반출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삼성과 하이닉스 중국공장 역할을 재정의해야 하는 문제도 생겼다.

그리고 중국 반도체 국산화 전략도 장기적인 위협이다. 중국의 28㎚급 반도체 기술기업에 대한 법인세 10년 감면, 수입 반도체 장비에 대한 관세감면 등 파격 지원조치도 장기적으로 한국 반도체 업계에는 큰 위협 요인으로 생각된다.

-우리 산업도 일본 수출규제, 차량용 반도체 부족 등 공급망 교란의 직접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상황에 대응해 어떤 통상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나?

◇여한구=통상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통상전략 중심 축도 공급망 안정성 확보, 기술패권 대응, 디지털 통상 주도권 확보, 세계 백신 허브 도약,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통상 측면 지원 등 공급망·산업정책을 지원하며 국부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통상 정책도 과거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변화가 요구된다. 지난 8월 통상교섭본부장 취임 후 기존 '교섭형 통상'을 넘어 국부창출에 적극 기여하는 '국부창출형 통상' 전략으로 전환했다. 구체적으로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9월부터 5대 핵심 전략분야에 대한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공급망·기술 협력, 백신 세계 허브화, 디지털·탄소중립 전환 등 5대 전략 분야에 대한 우리 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국부창출형 통상' 전략에 따라 지난 100일간 소부장 핵심기업 유치, 백신 생산국과 파트너십 구축 등 우리 기업 세계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며 가시적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후속조치 일환으로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해 공급망·기술·디지털·백신·기후변화를 포괄한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뉴욕에서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 싸이티바(Cytiva)의 대한 투자발표를 포함한 한미 백신 협력성과를 발표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세계 보건위기 극복과 국제협력 강화를 위해 EU와 백신협력 확대, 우리나라 자유무역협정(FTA) 최초로 '한-필리핀 FTA' 협력 챕터 내 백신협력 부속서 포함하는 것도 성과다. 최근 요소·요소수 수급 차질 발생 즉시 정부 고위급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10월 29일 주한중국대사를 면담했다. 대중국 요소 수입 지연으로 인한 한국 내 산업·물류 운송 차질 우려를 제기하고, 조속한 요소 수출 재개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우리나라는 그간 무역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최근 수출통제, 투자심사 강화 등 무역안보 중요성도 부상하고 있다. '국부창출형 통상'을 통해 '무역진흥'과 '무역안보'를 균형 있게 추진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여한구=무역안보는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세계 무역을 가능하게 하는 안전장치로 수출통제, 전략기술 보호 등 국제 수출통제체제에 적극 동참하는 것은 세계 무역 지속성장을 위해 필수다. 특히 미·중 경쟁 심화 등 국제 질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신뢰할 만한 무역안보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우리 기업 입지는 크게 약화되고 우리 수출 지속가능 성장에도 장애가 될 우려가 있다.

이에 정부는 국제 수출통제체제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면서 무역 진흥과 안보 균형 추진을 통해 우리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3가지 방향성에 따른 무역안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기업 지원 강화다. 무역안보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수출통제, 투자심사, 기술보호를 유기적이고 통합해 운영하면서 기업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현장 의견을 반영해 기업 편의성 제고를 위해 관련 제도 등을 지속 보완한다.

첨단기술 보호 공조도 추진한다. 최근 기술안보 중요성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반도체·이차전지 등 우리 산업이 강점을 가진 분야 핵심기술 보호제도를 강화하고 유사 입장국간 공조노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협력도 강화할 예정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위상에 걸맞게 국제 수출통제 선도국으로서 국제 수출통제체제 규범을 형성하고, 주요국간 협력 강화 등 세계적인 논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각국 기술 확보·통제가 기술 안보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술통상 전략' 핵심인 첨단 기술 '육성'과 '보호'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여한구=치열해지는 세계 기술패권 경쟁 아래에서 주도적 위치 선점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첨단기술 육성·보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기술통상 전략, 즉 첨단기술 '육성(promotion)'과 '보호(protection)'를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아우르며 기술주도권 선점경쟁에 대응하는 전략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현재 입법중인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은 핵심 산업 육성과 보호 전략을 종합했다.

기술통상 진흥을 위해 국제기술협력으로 핵심기술 확보, 경쟁력 강화, 세계 기술표준, 디지털 통상규범 정립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기술경쟁력이 높은 국가와는 기술교류·공동개발을 추진하고, 개도국에는 우리 기술 원조·이전, 우리 기술표준 확산 등을 통한 기술 연계성 강화를 촉진해야 한다. 첨단기술, 신기술에서 표준 확보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핵심 열쇠로 인식되고 있는 바, 세계 표준 패권 경쟁에서 우위 확보를 위해 '국제 표준화 추진전략'도 발표했다.

기술 유출은 국민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세계 기술 강국은 기술 보호를 국가안보로 격상해야 한다. 기술 유출시 국가 안보, 국민경제에 영향력이 큰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수출 및 해외 인수합병(M&A) 허가를 받도록 규정해야 한다. 정부는 반도체, 이차전지 등 12개 분야 73개를 핵심기술로 지정했다. 기술개발 추세에 맞춰 지정을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인력을 통한 해외 기술유출은 보다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 보유인력에 대한 관리 강화와 인센티브를 확대해 '핵심 인력 국내 선순환 구조'도 확립해야 한다. 효과적인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서는 국내 정책 노력과 더불어 첨단기술에 대한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ies)'간 공조도 중요하다.

박희재 산업기술보호협회장
박희재 산업기술보호협회장

◇박희재(산업기술보호협회장)=핵심 기술 또는 혁신역량이라는 차원에서 우리나라 기업 현실을 보면 대기업은 나름대로 세계 경쟁 프레임 속에서 혁신역량을 준비해온 반면 우리나라 대부분 중소기업 현실에서는 그리 녹록치 않다.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도 나오듯이 우리나라 중소기업 상당수는 내수형 기업으로서 수출이나 세계 시장 경쟁력, 즉 세계 혁신역량 부분이 대단히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세계는 하나의 경기장(One Arena)'을 언급한 것처럼 이미 세계 경쟁력과 혁신역량은 하나 경기장 안에서 국가와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대단히 취약한 혁신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사실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따라서 기업 혁신 역량을 올리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연구개발 지원이 절실하다. 특히 중소기업이 겪는 가장 어려운 문제가 혁신 연구인력의 부재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대학과 연구소 연구혁신역량을 연계해 기업 경쟁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으로 연구개발이 전개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순한 연구비 지원 차원이 아닌 산학협력 생태계, 제도, 인프라 구축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두 번째로는 우리나라 기업, 특히 중소기업 낮은 기술보호 수준 현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나라는 지식재산권 등 기술보호 수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기술보호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 보고서에 나와 있을 정도로 대단히 취약하다. 기술보호 프레임 3단계를 보면 크게 비밀유지계약(NDA), 영업비밀 및 부정경쟁방지법, 특허 및 지식재산권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선진국에서는 작은 기업들도 거래상담 시작 전에 첫 단계인 NDA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부 기업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러한 기본 절차조차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기술, 정보 등 무형자산에 대해서 보호인식이 대단히 낮다는 것을 반증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이러한 기술보호에 대해서 거의 무방비라는 현실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러한 기업 기술보호에는 필요한 인력, 장비, 교육 훈련 등 사업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기업 특히 중소기업을 위한 기술보호 프레임 구축에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절실하다.

-기술패권 경쟁 시대 공급망, 기술, 대외 전략 등 여러 관점에서 의견을 나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여한구=지금 세계는 대전환기에 있다. 이 대전환을 촉진시키는 '메인 드라이버(main driver)' 중 하나는 '새로운 기술(emerging technologies)'다. 이것이 G2를 포함한 국가간 기술패권 경쟁과 팬데믹으로 인한 디지털화로 인해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이 대전환기에 우리나라가 세계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새롭게 떠오르는 신기술 기술패권 경쟁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통상 융합, 즉 기술통상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미국과 EU간에 구성한 TTC가 좋은 사례다. 기존 통상 범위를 넓혀서 통상을 새 기술 보호를 위한 수출통제, 외국인투자 사전심사, 산업기술 보호와 함께 새 기술에 대한 국제 기술표준 형성 등 신기술을 규율할 새 룰을 만들기 위해 통상과 기술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ies)'이 주도해 이러한 새 기술 규범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트렌드다. 미국 등에서 협상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 중에 “당신이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당신은 메뉴에 올라 있을 것이다(If you are not at the table, you will be on the menu)”라는 말이 있다. 의역하면 “우리 이익을 적극 반영하려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우리 이익을 반영하기는커녕 상대에 의해 요리 당할 것이다”라는 의미다.

이렇게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대전환기 속 치열한 세계적인 경쟁 아래 우리 기업, 우리나라 이익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는 통상에서 이러한 세계 트렌드와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기술통상을 적극 강화해야 한다.

◇박희재=기술패권과 세계 공급망 재편 등 이슈는 사실 기업 사활을 좌우할 정도 중요한 이슈다. 기업이 만일 제3국으로 가서는 안 되는 전략 기술 등을 부분적으로 이용해 제품을 생산해 제3국에 판매 등을 할 때는 해당 제품뿐만 아니라 기업 전체가 페널티를 받아서 다른 선진국으로 총체적인 수출금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기술이나 제품에 대한 상세한 가이드라인에 대해서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대기업은 자체조직 또는 로펌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 대부분 중소기업은 이러한 도움으로부터 거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따라서 국가에서 이러한 지원과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둘째는 이런 세계 공급망 이슈에서는 핵심기술 뿐만 아니라 핵심 소재와도 연계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이차전지 일부 핵심소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는 대단히 높아서 이에 대한 대책은 단순히 기술 측면에서만 다룰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이에 대한 정교한 대책들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첨단 핵심기술이나 제품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과는 다른 전략과 대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비즈니스들이 세계 공급망 이슈 등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김양희=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된 오늘날, 자급자족도 탈세계화도 불가능하다. 유럽이나 북미, 동남아처럼 GVC를 주변국과의 RVC로 대체하는 것도 우리에겐 맞지 않다. 최근 요소수 대란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는 오히려 과도한 중국의존도 완화에 더해 수출규제를 계기로 일본 의존도마저 줄여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긴밀한 국제분업 관계에 있는 이들과 '디커플링(Decoupling:국가와 국가, 또는 한 국가와 세계의 경기 등이 같은 흐름을 보이지 않고 탈동조화되는 현상)'도 한계가 분명하다. 여전히 GVC도 유효하다. 따라서 한국은 기술적 특징에 맞게 GVC, RVC 및 TVC에 공급망을 분산 배치하고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한편 각각 협력 대상을 선정하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TVC는 당분간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좌충우돌하겠으나 그 방향성은 명확하다.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디지털 전환을 좌우할 첨단 신흥 핵심 기술은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국 간 TVC 합류가 G7에 초대받은 한국의 합리적인 선택지다. 이는 우리 대외 발언권과 협상력 강화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도 이 맥락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TVC 성공을 위한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 근린국 중국과 협력은 RVC와 GVC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이며 지구 공통 현안인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격차 해소 등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파트너다. 우여곡절 끝에 내년 1월 발효되는 RCEP의 중요성도 이와 같은 시각에서 재음미해야 한다.

◇전병서=중국말에 “원숭이 길들이려고 닭을 잡아 피를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2차 기술전쟁에서 한국은 닭이 되면 곤란하다. 기술에서 미국 시장에서 중국을 모두 무시할 수 없는 한국의 세심하고 신중한 대중국, 대미국 기술전략이 필요하다.

여차하면 제2 반도체 협정을 만들려는 미국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고 미국 기술봉쇄에 맞선 중국 기술협력 압박이 한국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바이든 정부의 대미국 투자 확대 요구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계획대로 미국에서 미국의 인텔,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까지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다면 3~4년 후에는 공급과잉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성의 표시는 하되 공급망이 중요시되는 지금 한국 내 첨단공장 증설을 더 늘려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국과 관계는 3~4단계 기술격차를 더 벌리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중국 현지 공장은 기능전환이 불가피해 보인다. 첨단이 아닌 '레거시' 제품 양산공장으로 전환하고 국내에 첨단 '팹(Fab)'을 증설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이젠 기술전쟁 시대에 반도체는 민간기업 비즈니스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중이 막대한 보조금과 세금, 인력, 정책지원을 하는 마당에 한국이 여기서 밀리면 40년 공든 탑이 무너질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미국, 중국과 격차를 더 벌리는 전략을 하루 빨리 만들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정리=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