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산업화 서막을 올렸다. 1973년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하고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성장전략은 매우 단순했다. 대기업이 중화학공업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것이다. 중화학공업 제품은 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중간재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정부는 대기업에 집중했다. 흔히 많은 이들은 1966년 중소기업기본법 제정을 중소기업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1964년 정부는 중소기업 중점 육성 정책을 발표했다. 전문업종을 지정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쉽게 말해 대기업 전문업종을 지정하고 해당 업종 중소기업은 사업전환을 유도했다. 이렇게 하자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중소기업기본법이다.
정부 의도는 노골적이었다. 당시 중소기업기본법을 통해 중소기업의 대기업 계열화를 유도했다. 그러나 계열화 핵심은 납품인데 납품 규모는 전체 생산액 10%에도 못 미쳤다.
정부 예상은 빗나갔다. 이에 정부는 1975년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까지 제정했다. 하지만 계열화는 생각보다 더뎠다.
대기업 자금지원을 받는 중소기업이 7%에 불과했다. 오히려 대기업은 외국자본으로 그룹 내 계열사를 늘렸다. 1973년부터 1978년까지 5년 동안 현대는 22개, 대우는 25개, 럭키금성은 26개 계열사가 생겨났다. 여기에 중소기업에 배정한 차관 70%가 대기업으로 흘러 들어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는 더욱 커졌다. 그즈음 전두환 정부가 등장했다. 전두환 정부는 탄생 자체가 정의롭지 못했다. 그래서 '정의'에 유독 집착했다. 당시 정부의 눈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가 들어왔다. 마침내 중소기업은 보호·육성 대상이 됐다. 이러한 내용이 헌법에 그대로 담겼다. 경제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다.
이후 40여년 동안 바뀐 게 없다. 보호·육성은 변하지 않는 중소기업 정책 패러다임이 됐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위기마다 보호·육성은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 정치가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보호·육성은 더 두터워졌다. 중소기업은 보호·육성에 철저하게 머물렀고 정부와 공무원, 연구자 모두 여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보호·육성을 탐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는다. 부끄럽다.
이제 바꿔야 한다. 지난 40년 동안 걸쳤던 옷은 너무 낡았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옷이 필요하다. 정부 주도의 보호·육성보다 시장 주도 경쟁이 우선이다. 벤처기업과 일반 중소기업은 같지 않다.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창업도 전혀 다른 얘기다. 벤처와 스타트업이 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이 되는 게 현실이다. 벤처와 스타트업은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는다면 절대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없다.
보호라는 꼬리표를 떼야 한다. 소상공인은 전체 중소기업 90%가 넘는다. 주로 생계유지가 목적이다. 소상공인이 생계유지가 어려워 복지의 대상이 된다면 복지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제적 복지'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소상공인은 보호의 상징이 됐다.
사회적 약자라는 감성적 접근보다 효용이라는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이성적 판단을 선호하는 Z세대가 사회 중심으로 성장해 납세자로서 보호를 바라보는 시각은 절대 따뜻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위기가 끝나갈 무렵 한계기업 정리라는 이성적 시각을 기대해 본다.
육성 관점도 버려야 한다. 산업정책은 정부가 시장과 기업을 대신해 선도적으로 산업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산업에 한정된 생산요소를 집중한다. 시장 실패를 막고 정책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선택과 집중 방식이다.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자동차, 조선, 반도체가 산업정책에 의한 육성의 대표 사례다. 그러나 산업정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다. 특정 산업을 선택하고 집중하기엔 시장의 흐름이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정책을 대신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정책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ohdy@ko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