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인사혁신제도는 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 기치를 견인할 첫 사내정비 작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부회장이 최근 언급한 '냉혹한 현실 직시'와 젊은 직원 중심으로 제기된 '합리적 성과주의' 요구 등을 반영, 혁신적인 조직 변화의 첫발을 뗐다. 삼성의 인사제도 혁신은 국내 기업 전반에 걸쳐 '일하는 문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새 인사제도는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 변화 가속화 △임직원 몰입과 상호 협력 촉진 △업무를 통해 더욱 뛰어난 인재로의 성장 등을 목표로 마련됐다. 핵심은 미국 실리콘밸리식으로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 전환에 있다. 직급별 표준 체류 기간과 승격 포인트가 폐지돼 과감한 발탁 승진이 가능한 구조가 됐다. 기존 CL2(이전 사원·대리급), CL3(과·차장급)는 10년 가까이 지나야 승격이 가능했다. 제도 개선으로 업무 성과와 직무 전문성이 증명되면 단 몇 년 만의 승격도 가능하다. 30대 임원과 40대 최고경영자(CEO) 탄생도 가능하다.
일하는 과정에서 직급이나 연차가 개입될 여지도 없애 과감한 수평적 조직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회사 인트라넷에 직급이나 사번 표기를 삭제하고 승격 발표를 폐지한 게 대표적이다.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를 설치하고 사업장 내 카페·도서관 등에 '자율 근무존'을 마련해서 어디서나 업무에 몰입할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자유로운 실리콘밸리식 업무 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경쟁 중심이던 조직문화를 협업에 기반한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문화로의 전환을 유도한 점 역시 특징이다. 기존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상위 고과 획득을 위해 부서 내 경쟁이 치열했지만 절대평가로 전환, 다수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공정을 중시하는 시대 변화에 부합해 투명하고 공정한 제도 마련과 직원에게 동기 부여를 높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부서장 코칭 지원 프로그램인 '수시 피드백 제도'와 '사내 FA 제도', 국내·해외 법인 상호 교환근무 프로그램인 '스텝 제도' 등도 '일하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삼성 인재 양성 철학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사제도 개편은 이 부회장의 '뉴삼성' 비전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초석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 10월 이건희 전 회장 1주기를 맞아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라며 '뉴삼성' 구축 의지를 밝혔다. 이후 이달 24일 미국 출장 후 귀국길에서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다”며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창의와 도전의 '뉴삼성'을 만들려면 조직문화, 인사제도 등 혁신적 변화가 필요함을 에둘러 드러냈다.
이 부회장은 인사제도 개편을 위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C랩'의 임직원을 비롯해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는 워킹맘, 반도체·디스플레이 연구원, 스마트공장 근무 직원 등과 현장에서 만나 의견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 출장 도중에도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 경영진과 연쇄 회동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 육성에 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일하는 문화'를 제시함에 따라 국내 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삼성은 다양한 인재 채용,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전 회장은 1957년에 국내 최초로 공개 채용을 실시했다. 창업 이념인 '인재 제일'을 이어 받아 이건희 전 회장은 1993년 국내 처음으로 대졸 여성 공채를 도입했고, 1995년에는 학력 제한을 완전히 없앤 '열린 채용'을 도입했다. 남녀 차별 관행을 없애기 위해 △여성 전문직제 도입 △여성 대졸 공채 △여성 임직원 대상 교육·리더십 기회 확대 등 파격적 인사 혁신을 추진했다.
이 부회장 역시 2016년 직급 단순화를 골자로 한 제도 개편을 실시했다. 기존 7단계의 수직적인 직급 단계를 직무 역량 발전 정도에 따라 4단계 경력개발 단계로 변경했다. 직원 간 호칭도 '님' '프로' 등으로 바꿨다. 여기에 2009년부터 자율 출근제를 도입한 데 이어 2012년에 이를 확대, '자율 출퇴근제'를 실시했다. 이는 2018년 출퇴근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월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발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29일 “삼성에서 일하는 문화 혁신과 업무를 통한 직무 개발, 합리적인 성과제도 등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인사제도 개편을 실시한 만큼 기업 전반으로 삼성의 인사제도 혁신 확산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인사제도 도입 현황>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