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 준비' 의중이 담긴 파격적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10년간 유지해왔던 디바이스솔루션(DS), 소비자가전(CE), IT·모바일(IM) 등 3개 부문 체제를 DS와 세트(SET) 2개 부문으로 재편했다. 이를 통해 가전과 모바일 제품 등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삼성전자는 세트부문장을 맡은 한종희 부회장과 DS부문장을 맡은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 투톱 체제가 됐다. 뉴삼성을 기치로 내건 이 부회장이 쇄신을 위해 과감하게 판을 흔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과 있는 곳에 승진 있다...성과주의 반영
삼성전자는 회장 승진 1명, 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3명, 위촉업무 변경 3명 등 총 9명 규모 2022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인사의 키워드는 '성과주의'다. 김기남 DS부문장(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회장으로 승진해 종합기술원을 이끌며 미래 기술개발과 후진 양성 역할을 맡는다.
반도체 사업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낸 공로 등을 인정받은 덕이다. 최첨단 기술혁신의 인큐베이터로 불리는 종합기술원은 인공지능(AI)과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 첨단 소프트웨어 등 미래기술을 연구하는 브레인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사업지원TF장 정현호 부회장, SET부문 북미총괄 최경식 사장, DS부문 시스템 LSI사업부장 박용인 사장, SET부문 법무실장 김수목 사장 등이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중장기 사업전략 수립 지원, 삼성전자 및 전자계열사간 시너지 발굴 등을 통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한 공을 인정받았다. 최경식 삼성전자 SET부문 북미총괄은 구주총괄 무선담당, 무선사업부 북미PM그룹장과 전략마케팅실장을 역임한 영업 전문가다.
동부하이텍 대표 출신 박용인 삼성전자 DS부문 시스템 LSI사업부장 사장은 2014년 삼성전자 입사 후 LSI개발실장, 센서사업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면서 사업 성장을 주도한 공로로 승진했다. 김수목 삼성전자 SET부문 법무실장 사장도 각종 법무이슈 대응에 기여해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래사업 발굴 가속…이재용 부회장 승진은 없어
삼성전자가 파격 인사를 단행한 데는 이 부회장의 엄중한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최근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와 마음이 무겁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뉴삼성 도약을 위해서는 쇄신 인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미래설계는 이번 인사에서 승진한 정현호 부회장이 맡는다. 정 부회장의 사업지원TF는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사실상 삼성전자의 컨트롤타워로 꼽힌다. 정 부회장이 승진하면서 TF 조직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정 부회장 승진 인사를 통해 사업지원TF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뉴삼성으로 도약하기 위한 미래준비 역할을 강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사업지원TF는 전략·인사 등 2개 기능을 중심으로 삼성전자 및 관계사의 공통 이슈 협의, 시너지 및 미래사업 발굴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의 승진은 사업지원TF의 역할 중 특히 미래사업 발굴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심을 모았던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이번 인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4대 그룹 중 이 부회장만 유일하게 회장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2012년 승진한 이후 10년째 부회장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아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선 이 부회장이 이번 인사에서 승진할 가능성도 제기해 왔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가 남아있는 점 등을 고려해 회장 승진을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회장, 부회장 3명의 승진 인사를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는 결국 미래준비”라며 “수년간 사법리스크 등으로 정체돼 있는 모습을 보인 삼성의 변화가 앞으로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