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이 통신장애 비상대책 조사에 나선 것은 통신망 안정성이 금융서비스 제공과 직결된 문제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이용 통신사 수와 통신사업자 명칭을 모두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은 복수 이상의 통신망 사업자를 활용해 특정 통신사망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겼다. 일각에서는 KT 아현동 통신구 화재 사태와 이번 라우터 작업 오류로 인한 통신 장애 등으로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기관 통신망 다중화를 의무화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많은 금융기관이 통신망 안정성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있다. 업계에 따르면 자산 규모 5위 이내 A저축은행이 1개 통신사를 통해 단일 백본망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자산 규모 5위권 밖 저축은행 가운데 다수가 단일 백본망을 이용하고 있다. 백본망은 모바일·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대용량 데이터가 오가는 망으로, 단일 통신사를 이용할 경우 장애가 발생하면 서비스 제공 자체가 불가능하다. 카드·증권·보험사는 대부분 복수 통신자를 이용, 백본망을 이중화하고 있다. 그러나 제2 금융권 가운데 백본망을 삼중화한 기관은 카드사 1곳, 증권사 1곳뿐이었다.
제1금융권 은행은 대부분 사업자가 백본망을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를 모두 이용해 삼중화로 구축하고 있지만 증권·카드·저축은행 등에선 백업 장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각 지점의 업무를 처리하고 입출금기기(ATM)를 관할하는 영업점 업무망은 제2금융권의 경우 단일 통신사로 구축한 사례도 다수였다.
통신사 다중화는 사업자 간 서로 다른 IP 대역과 범위가 호환될 수 있도록 '보더 게이트웨이 프로토콜'(BGP) 연동을 활용한다. 복수 이상 통신사를 이용해서 통신망을 구성하면 평소에도 트래픽이 분산되고, 특정 통신사의 장애 발생 시에도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서비스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만큼 통신망 다중화를 제도로 마련,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대 국회에서는 KT 아현동 통신구 화재 사태를 계기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 금융기관에 망 다중화 의무를 부과하려 했다. 그러나 관련 개정안은 모두 폐기된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회도 통신사업자 다원화로 인한 통신망 안정성 확보에는 공감한다. 다만 통신망 구축에는 큰 비용이 드는 만큼 이를 제도로 강제하면 사업자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강력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전체 사업자를 모두 강제하기 어렵다면 일정 자산 규모 이상의 금융사부터 통신망 다중화를 의무화해 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표. 금감원 통신망 비상대책 조사 항목
정예린기자 yesl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