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현대차·기아, '중고차→신차' 선순환 구조 만든다

[스페셜리포트]현대차·기아, '중고차→신차' 선순환 구조 만든다

국내 주요 완성차 제조사가 새해 중고차 시장 진출을 예고하면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사업을 시작하는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신차뿐 아니라 중고차 시장에서도 점유율이 높은 만큼 중고차 품질 개선이 기대된다. 중고차 신뢰도를 높여 시장 규모를 키우고, 브랜드 이미지 개선으로 신차 판매량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독점적 지위 남용 관해서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뢰도 높은 정비·점검과 보증 서비스

소비자와 시민단체가 완성차 제조사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원하는 것은 신뢰도 높은 정비·점검과 보증 서비스 때문이다. 자동차를 개발한 업체가 정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중고차를 점검·수리 후 판매한다면 문제 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믿음이다. 문제가 있다면 중고차 보증 서비스를 통해 수리를 받을 수도 있다. 중소 중고차 업체를 통해 차량을 구매할 때보다 가격은 비싸겠지만 잠재 위험을 고려하면 인증 중고차를 선택한다는 게 대다수의 소비자 의견이다.

중고차 업계는 여전히 대기업 시장 진출을 반대한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바닥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지난 4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79.9%가 현재 “중고차 시장은 혼탁·낙후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완성차 제조사는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을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다. 양질의 중고차로 소비자에게 긍정적 경험을 제공한다면 향후 신차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중고차에서 부정적 경험이 쌓인다면 신차 구매를 꺼릴 수 있다.

수입차 업체들은 일찍이 중고차 시장에 진입해 인증 중고차 제도를 운영해 효과를 봤다. 독일 BMW는 2005년, 메르세데스-벤츠는 2011년 사업을 시작했다. 수입차 업체들은 정비·점검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차량 성능 점검, 무상 보증 등을 통해 소비자 불안감을 해소했다.

효과는 점유율로 나타났다. 국내 신차 시장에서의 수입차 점유율을 판매대수 기준으로 18%, 금액으로는 32%로 성장했다. 중고차 시장 점유율도 매년 1%씩 증가해 14% 수준으로 늘었다.

[스페셜리포트]현대차·기아, '중고차→신차' 선순환 구조 만든다

◇양질의 중고차만 매입→상품화

완성차 업체와 중고차 업계 간 논의했던 내용을 참고하면 현대차와 기아는 대리점을 통해 중고차를 매입하는 게 유력하다. 신차를 구매하러 온 소비자가 보유하던 중고차 매각을 원하면 매입하는 방식이다.

모든 차량을 매입하는 건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제공하기 위해서 기준을 둔다. 매입 대상은 출시한 지 5년 내 차량 중에서 주행거리 10만㎞ 이하의 차량으로 한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품화 과정에선 정품인 부품만 사용한다. 기존 업체 상당수가 재생 부품과 대체 부품을 사용해왔다는 점에서 문제 발생할 우려가 적다. 도색 완성도도 높을 것으로 보인다. 중고차의 경우 차량이 노후화되면서 출고 시점 대비 색을 옅어진다. 도색 대상 부분과 다른 부분의 색상을 맞춰 이질감이 없도록 하기 위해선 노하우가 필요하다.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 진입에 속도를 조절할지는 미지수다. 완성차 업계는 연도별 시장점유율 상한을 2021년 3%, 2022년 5%, 2023년 7%, 2024년 10%로 잡았으나 중고차 업계와 합의하지 못하면서 애초 제안한 안을 준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상품화 대상 차량을 제외한 차량은 기존 중고차 시장에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중고차 판매를 온라인 채널로 진행할지도 관심사다. 온라인 판매 시 고정비 절감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신차의 경우에는 현대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캐스퍼'만 온라인으로 판매 중이다. 판매노조 반대 때문이다.

◇신차·중고차 모두 판매...독점적 지위 남용 우려도

현대차와 기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하는 회사가 된다. 수입차가 먼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했지만 차이는 있다. 수입차는 신차와 중고차 사업을 모두 딜러사를 통해 진행하는 데 반해 현대차와 기아는 두 사업을 직접한다.

현대차그룹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게 돼 신차와 중고차 시세를 조정할 수 있다는 일부 우려가 제기된다. 신차를 판매하는 소비자 접점에서 양질의 중고차를 대다수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영향력이 더 크다.

실제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에서 현대차그룹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11월 기준 현대차와 기아의 점유율은 각각 41.8%(1038만대)와 28.0%(696만대)로 합산 점유율은 69.8%에 달한다. 전체 등록대수는 2486만대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소비자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때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긍정적”이라면서 “완성차 제조사가 신차·중고차를 모두 판매하는 만큼 이전보다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