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검은 호랑이의 해는 예년 못지않은, 격변의 시기가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디지털 기술 발전이 속도를 더하고,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열기를 더한다. 각국이 도전에 임하고,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 핵심 기반은 과학기술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해 도전과 변화 결과가 훗날 나라의 경쟁력과 위상을 좌우하게 된다. 주요 이슈 5개를 꼽아 살펴본다.
◇누리호, 달 탐사선 발사로 우주강국 원년 기록
올해는 우리나라가 향후 우주강국으로 거듭나는데 중요한 기점이 된다. 지난해 1차 발사했으나, 위성 모사체 궤도 안착에는 실패한 '누리호(KSLV-II)'가 또 한 번 기회를 가진다.
누리호는 과거 나로호(KSLV-I)와 달리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발사체다.
독자 개발한 75톤 엔진, 엔진을 여러 대 엮어 추력을 확대하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비롯, 각종 핵심기술을 우리 손으로 이뤘다.
37만개 부품을 국산화했다. 향후 우리기술로 이루는 우주개발 초석이 된다.
당초 2차 발사는 5월로 예정돼 있었는데, 어느 정도 연기가 불가피하다. 1차 발사시 비행 과정의 부력 증가를 고려하지 않은 헬륨탱크 고정장치 설계가 엔진 조기 정지를 불렀다.
오승협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추진기관개발부장은 “1차 발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조치방안을 내부검토 중”이라며 “해를 넘길만한 문제라고는 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8월로 예정된 한국형 달 궤도선(KPLO) 발사도 이목을 끈다. 이변이 없다면 KPLO는 연말쯤 달 궤도 안착, 달로부터 100㎞ 떨어진 상공에서 위성처럼 달을 관찰하게 된다. 2030년 달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는 프로젝트 기반이 된다.
김대관 항우연 달 탐사사업단장은 “8월 발사는 문제 없는 상황”이라며 “우주탐사가 우주영토를 확보하는 기반이 되는 가운데, KPLO가 이것의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급 기초과학 프로젝트 중이온가속기 빔 인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이 올해 최초 빔 인출을 계획 중이다.
중이온가속기는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소를 이온화하고 가속해 표적에 충돌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희귀 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첨단 대형 연구시설이다. 이를 활용하면 우주 탄생, 생명의 비밀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꿈과 같은 시설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기초과학을 몇 단계 끌어올릴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역할만큼 구축 난이도도 높다. 당초 완공 목표는 2017년이었으나, 아쉽게도 연기를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 다행히 지난 연말 저에너지 구간 초전도가속장치 설치를 마쳐 기대를 모은다. 직접 설계 및 제작, 성능 검증까지 마쳤는데, 이는 세계에서 8번째로 이룬 쾌거다. 올해 10월로 예정된 최초 빔 인출까지 이루면 그 의미를 더하게 된다.
권영관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부단장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가속기 구축을 시작해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사실”이라며 “10월 빔 인출이라는 일정은 리스크를 감안해 잡은 것으로, 이번에는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대계 대선 시행...과학기술 진흥책 관심
올해에는 대선이 이뤄진다. 매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국가발전에 과학기술 역할이 크다는 인식 아래 다양한 과학기술 공약을 쏟아내 왔다.
과학기술계와 연구현장에서는 다양한 요구와 정책 제안이 이뤄지고 있다.
13개 단체가 모인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대과연)은 최근 성명에서 과학기술부총리 부활, 청와대 과학기술혁신실장 및 과학기술수석비서관 신설, 모든 부처와 지자체 과학기술혁신담당관 신설 등을 제안했다.
한국공학한림원의 경우 정책총서 '새로운 100년 산업혁명, 추월의 시대로 가자'를 발간, 과제와 어젠다를 내놓았다. 지능화 혁신(AIX)과 탄소중립을 강조한 산업 대전환,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을 고치고, 전략성을 강화하는 R&D 혁신 등을 강조했다.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에서도 과제중심제도(PBS)가 연구현장 몰입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이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당연직 부의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술주권 확보 가속...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 육성
미·중 기술패권 경쟁 격화로 글로벌 산업지형과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첨단 과학기술 주권 확보를 통한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 속 주도권 확보를 위해 올해 10개 국가 필수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전년 대비 약 11.6% 증가한 총 6조4227억원 규모 R&D 예산을 투입한다.
10개 전략기술은 △인공지능 △5G·6G △첨단 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수소 △첨단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보안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기술 수준 조사에 따르면 이들 전략기술 경쟁력은 최고 기술국 대비 60~90% 수준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이들 전략기술을 향후 기술패권 경쟁에서 지렛대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들 전략기술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해 대체불가능한 원천기술을 확보, 수요산업으로 그 성과를 확대할 계획이다.
양자컴퓨팅기술개발(114억원), 바이오의료기술개발(2438억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1727억원), 6G 핵심기술개발(307억), PIM 인공지능반도체 핵심기술개발(210억)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같은 전략기술별 R&D 전문 기획·관리기관 도입도 예고된 상태다. 한국형 DARPA를 통해 과거 평가 중심적 연구 문화를 탈피, 전략기술 분야 내 도전적 R&D 활동 체계가 마련될 전망이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술적 중요도에 따라 전략을 마련하는 등 속도감 있는 추진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기초연구 예산 2조원 시대 개막
기초과학 R&D 예산 투입 규모가 '사상 첫' 2조원대를 돌파했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기초과학 R&D에 투입하는 예산은 총 2조136억원이다. 지난해 1조7900억원에서 11.8% 늘어난 규모다.
기초과학 R&D 지원 예산 규모는 역대 정부를 거쳐 지속해서 늘고 있다. 실제 2012년 예산 규모는 6553억원에 머물렀지만 이후 2017년 8822억원까지 늘었다. 현 정부는 2조원대 기초과학 R&D 예산 확보를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 매년 약 3000억원 예산 확대를 목표로 삼으면서 2019년에 이르러 첫 1조원 시대를, 올해는 2조원 시대를 열었다.
예산 확대를 통해 수학, 화학, 물리학, 지구과학 등 기초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자율적 연구 주제와 범위를 설정해 연구하는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이 강화된다. 특히 올해는 기존에 한정된 분야별 맞춤형 지원을 전 분야로 확대하고, R&D 성과 기반 기술사업화·창업 지원도 계획돼 있다.
기초과학 R&D 예산 확대를 통한 '양적 성장'이 올해 '질적 성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그동안 과학기술계를 통해 지적됐던 R&D 예산 확대 대비 투자효율 저하 문제 해결에 나선다.
분야별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활용해 효율적인 R&D 투자 방향을 수립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는 '국가기술전략센터(가칭)'이 대표적이다. 출연연이 단편적 R&D 사업이 아닌 R&D 정책·기획 기능에 집중함으로써 기초 및 원천연구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이인희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