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사기꾼의 1차 표적은 이미 금융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다. 사기를 한 번 당해서 경계심이 높을 것 같지만 돈을 돌려받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뺏긴 돈을 되찾아 주겠다'고 접근하는 것과 유사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액의 착수금을 건넨 피해자들은 얼마 후 또 당했다는 것을 알고 땅을 친다.
머지포인트 피해자들 사이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우려가 커졌다.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는 최근 고객이 충전한 포인트를 인질 삼아 폭리를 취하며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지난해 8월 머지포인트 서비스가 사실상 중단된 이후 포인트를 사용하지도, 환불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이들의 약한 마음을 악용해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것처럼 보인다.
사태 최초 발생 후 머지플러스는 간간이 결제 가능한 가맹점을 내어 주기도 했다. 많게는 수백만원씩 포인트를 충전한 고객들에게 '한 달에 1만원만' 결제 가능한 식당을 소개했다. 1년에 12만원씩 10년은 써야 충전한 포인트를 다 쓸 수 있다는 조롱이 뒤따랐다.
지금은 그마저도 다 없어졌다. 머지플러스는 오프라인 결제처를 모두 없애고 온라인 쇼핑몰로 플랫폼을 전환했다. 말이 플랫폼이지 입점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매치메이커스' 하나뿐이다. 지난해 11월 사업자를 등록한 이 업체는 사실상 머지포인트의 위탁판매사로 의심받고 있다. 홀로 머지포인트 플랫폼에 입점한 22개 브랜드를 유통한다.
이 회사가 취급하는 상품 대다수는 일반 시중가보다 비싸다. 일부 브랜드는 온라인 최저가 대비 6배에 달한다. 온전하게 머지포인트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유한 머지포인트 전액을 '머지코인'이라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한번 머지코인으로 바꾸고 나면 환불이나 취소가 불가능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머지코인 출시를 핑계로 그동안 받아왔던 환불 접수도 중단했다.
이와 같은 행보는 고객 예치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머지플러스가 짜낸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 고객들이 포인트를 쓸 수 있는 구멍을 마련했으니 사기성 범죄는 아니라고 항변하기 위함이다.
사태를 유발한 권남희 머지플러스 대표 등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해 말 구속됐다. 머지코인 전환은 사업 정상화를 위해 회사가 노력했다는 점을 내세워 감형받기 위한 목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런 핑계라도 대려면 최소한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품을 취급하고 판매해야 한다. 고객 기대를 배신한 과오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처럼 '하나만 걸려라' 하는 태도로 바가지를 씌우려 해서는 안 된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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