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특허 업무를 총괄하던 전임 IP센터장의 퇴임 후 행보가 논란이다. 오랜 시간 재직한 '친정'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기업 측 방어 전문가가 '해적'이 되어 돌아왔다는 거친 표현까지 등장했다. 도의적 측면에서 국민 정서와도 크게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역시 고위급 임원의 이례적인 행보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와 함께 특허 업무를 수행하던 IP센터는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동시에 불미스러운 전례를 남기는 것을 우려해 더욱더 강경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어 TV 분야에서도 추가 특허 분쟁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해 그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으로부터 매입한 차세대 방송 표준 관련 특허 라이선스는 821건에 이른다. 145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라이선스 확보에 투입한 만큼 이를 상회하는 수익화 활동을 펼칠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특허 업계에서는 기업체 출신 전문가가 이른바 '특허괴물'이라 불리는 특허관리전문업체(NPE)로 자리를 옮긴 뒤 공격자 입장으로 돌아선 사례가 없지 않다. 미국 소재 글로벌 특허관리전문업체(NPE) '마르코니'의 경우 에릭슨에서 최고지식재산책임자(CIPO)를 지낸 카심 알팔라히가 설립한 회사다. 일카 라나스토 전 노키아 특허총괄임원도 이 회사 주요 경영진이다. 지난해 초 마르코니가 한국대표로 선임한 인물이 장호식 전 삼성전자 IP전략팀장(전무)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TV, 반도체 등 전자산업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만큼 세계 각국에서 매주 한 차례 이상 특허 관련 송사에 휘말린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LG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우리 기업 대부분이 상시로 겪는 일이다. 특허분쟁은 기업 경영에서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다. 해외에서는 헤지펀드 등 글로벌 금융 자본이 NPE의 특허 소송 프로젝트에 참여, 방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국내 지식재산(IP) 생태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특허 가치와 발명자 권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IP 수익화 인식도 부족하다. 인구 100만명당 특허출원 건수 기준으로는 세계 1위에 오른 지식재산 강국이지만 2020년 기준 IP 무역수지 적자는 2조원을 넘어섰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파상공세를 펼치는 글로벌 NPE의 공격에 각 기업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무분별한 특허분쟁으로 인한 기업 활동 위축을 방지할 정책적 안전장치 마련이 함께 필요하다. 아울러 특허 전문가가 기업체 밖에서도 다시 한번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건강한 IP 생태계 육성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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