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탄생에 열광하면서도 플랫폼 비즈니스모델을 보는 인식은 곱지 않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서 혁신을 통해 급성장했지만 단기간에 이룬 성장을 두고 '독점' '갑질' 등 부정적 프레임을 기반으로 규제의 칼날을 겨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규제의 덫에 갇혀 성장 발목이 잡혔다. 어느 순간 '죄인'이 된 플랫폼 업계의 고충을 기업 사례별로 들여다본다. 디지털 전환 과도기에서 정부와 플랫폼 기업의 역할을 되짚어 보았다 <편집자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e커머스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유통업에서 온라인과 모바일은 핵심 채널로 부상했다. e커머스 급성장은 퀵커머스 동반성장을 이끌었다. 국내 퀵커머스 시장은 배달의민족의 'B마트'가 개척했다. 배민은 음식점 주문을 중개하는 서비스로 시작해 △직접 배달(배민1) △신선식품 즉시배달(B마트) △식자재 공급(배민상회) 등으로 영역을 다각화하고 있다. B마트의 경우 배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생필품과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배민라이더스나 배민커넥트 등 기존 배달망을 이용해 빠르게 배달한다. B마트가 인기를 끌자 쿠팡에서도 '쿠팡이츠마트'를 내놓았고,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V마트(오아시스×부릉), 텐고(바로고), 10분 특공대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배민의 서비스 확장에 정치권 등에서는 '플랫폼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이라며 규제를 들이대고 있다. B마트의 경우 기존 e커머스와 동일한 형태의 모델이지만 배송을 위한 물류창고를 도심에 구축한다는 이유만으로 '골목상권 침해' 논리로 규제 의무를 씌우고 있다. 국회에서는 B마트를 타깃으로 품목·입점 규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상생협력법 개정안 발의가 추진된 바 있다. 지난해 말 국정감사에서 이동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B마트 규제를 위한 상권영향분석을 산업통상자원부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연구는 진행 중이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치권은 또 다른 규제 입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B마트 등 퀵커머스 규제가 거론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해외에서는 오히려 비대면 즉시 배송의 장점을 바탕으로 소비자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유럽 등에서도 퀵커머스 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고퍼프(기업가치 약 150억달러), 도어대시(기업가치 약 390억달러) 등의 스타트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3~7일 후 배송이 기본이던 유럽에서도 온라인 식료품 판매가 오프라인 판매를 앞질렀다. 글로보(스페인), 월트(핀란드), 플링크(독일), 카주(프랑스) 등 배송시간 1시간 이내 퀵커머스 기업이 우후죽순 탄생하고 있고, 이들은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퀵커머스 기업 관계자는 “퀵커머스 규제 논의는 전혀 없다”면서 “기껏해야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물류창고 앞에 많이 세워져 있는 것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는 정도”라고 말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확보한 이용자를 바탕으로 기술 혁신을 거듭하며 비즈니스 경계를 허문다. 언제든 1등 자리는 바뀔 수 있어 서비스 다변화를 추구한다. 온라인 서점 사업에서 출발해 막대한 이용자를 확보한 아마존만 보더라도 전자상거래, 물류, 인공지능(AI), 클라우드컴퓨팅, 우주산업까지 무한 확장하고 있다.
배민의 소상공인을 위한 식자재몰 '배민상회' 역시 위기에 처했다. 경쟁 중소업체가 식자재 공급 사업 철수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새로운 서비스 확장이 외식업 소상공인에 주는 효용은 외면되고 '플랫폼의 사업확장'이라는 형태만 부각돼 규제 압박을 받는 모양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국내 플랫폼업체가 서비스를 확장해 글로벌화를 이끌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 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플랫폼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 시도가 지속될 경우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조차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