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침해소송의 변리사 대리 허용 문제로 지루하고 소모적인 논쟁의 한 해를 보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 국회 주관 공청회에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됐다. 일부 변호사 출신 의원이 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의 대리를 허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 변호사와 공동대리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하자는 말이 국회에서, 그것도 변호사의 입에서 나오면서 관련법 통과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변호사는 일관되게 특허침해소송도 민사소송의 일종이므로 변호사 단독으로 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합당한 지 판단하려면 특허 침해 소송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과 특허 침해를 입증하는 것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특허 침해의 입증은 눈에 보이는 기술과 기술 간 물리적 유사 여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로 기술된 특허 서류상의 특허 청구 범위를 해석하고 특허권의 범위를 설정한 후 문제가 된 실제 기술이 특허권의 범위에 포함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특허 침해 입증을 위해서는 특허 명세서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하므로 기술의 이해에 더해 특허 문서 내용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정통해야 한다. 최초 특허출원 시 특허명세서는 변리사만이 작성하도록 법제화돼 있어 평소에 특허 명세서를 다루지 않는 변호사들은 특허 침해 입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변호사가 회계장부에 정통하지 못한 것과 같다. 따라서 특허 소송에 변리사 조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변호사회는 변호사 이외에 변리사까지 추가로 선임하려면 소비자의 소송 비용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이유로 변리사와의 공동대리도 반대한다. 대리인을 추가해야 한다면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타당한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과 소비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 우선 특허 침해 소송을 변호사만이 대리할 수 있는 현재 구조에서는 처음부터 수가 자체가 높게 형성돼 있다. 또한 변호사만으론 소송을 할 수 없으므로 기본적으로 변리사를 고용하고 있는 중대형 로펌에서만 수임이 가능하다. 로펌 간판을 이용해 고가로 수임한 뒤 내부에서 변리사를 활용하는 구조다.
특허 침해 사건의 변리사 공동대리가 가능하게 된다면 특허 침해 소송은 증가할 것이다. 특허 소송 문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고객의 특허를 출원 단계부터 관리해 온 특허사무소에서 침해소송의 필요성을 인지해서 사건 수임을 하고, 함께 보조를 맞출 변호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중대형 로펌이 아닌 변리사사무소에서 최초 수임하므로 합리적인 비용으로 사건 수임이 가능하고, 중대형 로펌 소속이 아니더라도 특허 사건에 정통한 경험 많은 변호사를 합리적인 수임료로 선임할 수 있게 돼 오히려 소비자의 소송 비용 부담은 줄어들 가능성이 훨씬 높다.
변호사의 우려는 일부 대형 로펌의 문제일 수 있다. 변리사에게 특허 침해의 공동대리가 허여 된다면 그간 특허 소송에서 소외된 다수의 실력 있는 중소 로펌 변호사들이 변리사들과 손잡고 참여할 수 있다. 많은 변호사에게 오히려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침해 소송의 변론 때에도 변리사가 직접 나설 수 있다. 지금처럼 특허를 모르는 변호사가 공판 전에 변리사에게 하나하나 묻고, 대리인석이 아닌 방청석에서 쪽지를 돌리는 난센스도 없어질 것이다.
특허출원은 세계 4위인 반면 특허 침해 소송의 문턱이 높아 특허권 보호는 매우 미흡하다는 오명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준석 특허법인 위더피플 대표변리사 leejs@wethepeop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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