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로컬(지역 밀착 생활권)' 신드롬을 이끈 당근마켓이 각종 개인간거래(C2C) 규제로 성장시계가 멈출 위기에 처했다. '낡은 법안'의 잣대로 분쟁 시 개인정보 공유, 간이 계약서 작성 등의 의무를 부과하려 하고 있다.
하이퍼로컬 서비스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축소되면서 물꼬를 텄다. 삶의 중심지가 주변 동네를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 물품 거래뿐 아니라 지역 동호회, 커뮤니티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하이퍼로컬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미국 넥스트도어는 동네 체육대회, 지역 소식, 생활 정보 공유는 물론, 중고거래까지 하는 대표적인 '하이퍼로컬' 업체로, 현재 기업가치가 43억달러(약 5조원)에 달한다. 일본의 '메루카리'도 올해 초 기준 시가총액 9598억엔(약 10조원) 규모로 올라섰다.
국내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는 지난해 2월 '스페인의 당근마켓'으로 불리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에 1550억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세계적으로 '하이퍼로컬' 바람이 불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규제도마'에 올랐다. 당근마켓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던 C2C 시장에 한국형 C2C 모델 가능성을 제시했다. 성장 초기엔 지역공동체를 다시 연결한 '신선한 바람'으로 추켜세웠지만 덩치가 커지자 정부와 국회에서 매서운 규제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당근마켓은 지난해 1789억원 규모 시리즈D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조원 이상으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규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입법예고한 전자상거래법(이하 전상법) 개정안 제29조다. C2C 거래 플랫폼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개인 판매자의 성명, 주소, 전화번호 등의 신원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당근마켓에서 거래 시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간편한 익명거래'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당근마켓 측은 분쟁 시 개인정보를 공유할 경우 위험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판단, 플랫폼 내 시스템 마련과 함께 제3의 조정기관을 통해 이용자 간 분쟁 해결은 물론 소송까지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라는 비난으로 전상법 개정이 지지부진해지자 공정위는 현행법으로도 C2C를 규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공정위는 현행법 기준으로 당근마켓을 조사 중이다. 하지만 전상법 적용 대상은 사업자·소비자간 재화 또는 용역의 거래(B2C)에 적용되는 법이다. 순수 C2C 거래 서비스를 다투는 법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른 C2C 산업과 시장 상황의 변화에 대한 이해 없이 스마트폰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20년 전 만들어진 낡은 법안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그간의 소비자 개인정보 보호 논의가 무색하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김상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회부의장이 일정금액 이상 거래를 할 경우 혹시 모를 분쟁을 사전 대비하기 위해 '간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고가의 물품을 올린 이용자가 화제가 되면서 전문 판매상이 조직적으로 관여해 중고거래 플랫폼을 탈세 루트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세청 등 금융당국에서 규제 칼날을 또 당근마켓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이 같은 규제는 신뢰에 기반한 C2C 본질적 가치와 속성을 배제하고 일반 '쇼핑몰'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가 이용자이면서 판매자인 C2C에서 계약서 작성이라는 대안은 이를 상업적 거래 목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내와 달리 해외 하이퍼로컬 서비스들은 개인정보 열람 요구를 일체하지 않는다. 심지어 서비스 가입 시에도 전화번호 없이 이메일만으로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근마켓은 현재 해외 4개국 220여개 지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정부의 무리한 개인정보수집 프레임에 구속될 경우 글로벌 확대 보폭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병준 서울대 교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서비스가 탄생할 때 정부와 사회가 그 본질을 제대로 살피고, 산업의 성장 과정 중 최적의 대안을 찾아가며 신중하게 규제하는 것이 혁신적 신비즈니스 모델을 살리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의 절차”라며 “충분히 다른 형태로 방지와 문제해결이 가능한, 발생하지 않은 사고에 대한 과도한 피해 우려가 자칫 한국기업들의 유니콘 기업으로의 성장과 글로벌 진출 기회의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표>당근마켓 투자유치금액 현황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