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전 업체의 사상 최대 실적에도 올해 국내 시장 성장세는 둔화될 조짐을 보인다. 억눌렸던 수요가 급격히 회복되는 '펜트업 효과'가 시들해지고 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 지출 감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상으로 복귀가 가속되면서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마케팅과 프리미엄 제품 판매 전략이 업체별 실적을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전 매출은 32조364억원으로 2020년과 비교해 8.5%가량 성장한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지난해 성장은 2020년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른바 '보복소비'가 가전 수요로 몰린 영향이 크다.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TV, 냉장고, 세탁기, 공기청정기 등을 구매하는 경향이 확산했다.
가전 업계도 크기와 기능이 향상된 프리미엄 가전 판매에 집중해 매출 규모를 키웠다. 이 같은 수요 증가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가전 부문에서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 가지만 속도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유행 2년이 지나면서 상당 부분의 가전 교체가 이뤄졌다. 앞으로 점차 외부 활동이 늘어나면서 가전 소비 지출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 인상에 따른 지출 부담이 늘어 가전 구매력도 다소 떨어질 전망이다.
최근 5년간 국내 가전시장은 2019년을 제외하고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했다. 2020년에는 재난지원금과 으뜸효율 가전 환급사업 등 정부 지원으로 전년 대비 18% 성장했다. 지난해 한 자릿수(8.5%) 성장은 기저효과 덕도 있지만 위축된 수요가 일시에 늘어나는 펜트업 효과가 줄어든 요인도 작용했다.
롯데하이마트, 삼성디지털프라자, LG베스트샵, 전자랜드 등 국내 가전 유통 4사의 성장률도 삼성디지털프라자를 제외하면 조금씩 둔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시장 1위 롯데하이마트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거뒀고, LG베스트샵과 전자랜드도 소폭 성장에 그쳤다.
지난해 이들 가전 4사의 합산 매출 추정치는 약 11조45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했다. 최근 5년간 평균 성장률 6.3%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둔화 조짐은 TV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전 세계 TV 출하량은 5039만8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4.8% 하락했다. 올해 TV 출하량 역시 전년보다 100만대가량 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역시 글로벌 상황과 유사하게 TV를 포함한 가전 수요의 정체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가전 유통업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올해 온·오프라인 채널과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한다. 무리한 마케팅 전략 추진은 오히려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급성장한 온라인 채널도 한층 보강한다. 지난해 가전 구매 중 온라인 비중은 60%에 이르렀다. 여기에 일상으로의 복귀가 속도를 내고 소비자경험(CX)이 중시되면서 체험형 플래그십 매장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하이마트는 체험형 매장 메가스토어를 지난해 15개에서 올해 25개로 늘리고, LG베스트샵도 비대면 환경에 맞는 무인 체험매장을 지난해보다 10개가량 확대한다. 삼성디지털프라자 역시 지난해 메가스토어 두 곳을 포함해 프리미엄 매장을 20곳으로 늘렸다. 공간 인테리어 가전, 라이프 스타일 가전 등 취향에 따라 디자인을 선택하는 프리미엄 가전과 대화면·고화질 TV, 플래그십 스마트폰 등 판매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020년의 급격한 수요 증가만큼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올해에도 프리미엄 가전을 중심으로 성장은 이어 나갈 것”이라면서 “개인 취향과 사용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가전이 시장에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프리미엄 전략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