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구조적·행태적 조치를 모두 부과했다. 구조적 조치에는 10년간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당장 슬롯·운수권 반납은 없지만 합병 시너지는 낮아졌다. 신규 항공사와 기존 경쟁 항공사에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와 외항사가 알짜 노선 위주로 진입하면서 양사 수익성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쟁 활성화·소비자 보호에 방점
공정위는 작년 1월 대한항공의 기업결합 신고 후 8명의 전담심사팀을 구성하고 약 120개에 달하는 광범위한 시장 각각의 경쟁제한성을 평가했다. 공정위는 총 119개 시장에 대한 경쟁제한효과를 분석해 항공여객 국제선 65개 가운데 26개 노선, 국내선 22개 가운데 14개 노선에서 운임 인상 등 경쟁제한 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슬롯·운수권 반납이라는 강한 구조적 조치를 부과하면서도 기업 부담을 낮추기 위해 이행 기간을 10년으로 정했다. 당장 새로운 항공사와 기존 항공사가 진입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다. 특정 노선에서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기간에 가격 인상 조치 등으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며 행태적 조치도 부과했다. 공정위는 양사 통합에 따른 소비자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국내 항공 운송시장의 경쟁시스템이 유지·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기회 맞은 LCC… 중장기적 접근할 듯
공정위 조치로 LCC는 사업 확대 발판을 마련했다. 수익성 높은 단거리 노선에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장거리 노선에는 신중한 접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선은 제주-내륙 노선에 LCC가 적극 진입할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해당 노선 합산 점유율은 60~100%에 달한다.
국제선은 지역별로 갈린다. 동남아시아·동북아시아 지역 노선은 LCC가 현재 보유한 기종으로 운항이 가능, 수요가 많은 지역부터 순차 대응할 수 있다. 다만 장거리 노선에서는 당장 슬롯과 운수권 반납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양사 합병에 따라 경쟁제한이 높은 지역은 미주와 유럽이지만 이들 노선에 대응하려면 LCC가 항공기를 추가 도입해야 한다. 외항사가 진입할 가능성도 열려 있지만 내국인이 해외로 나가는 아웃바운드 수요가 많다는 점과 국내 소비자의 높은 국적사 선호도를 고려하면 공격적으로 확대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경쟁당국 심사엔 '청신호'
공정위가 높은 수준의 조건부 승인을 내리면서 해외 경쟁 당국 심사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영국, 호주 등 6개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심사하고 있다. 공정위는 구조적 조치뿐만 아니라 가격 인상까지 제한하는 행태적 조치까지 내렸다. 가격 결정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맡기지 않았다.
해외 경쟁당국이 고려하는 부분의 하나인 인천행 노선의 자국민 항공료 부담 증가가 해소됐다는 평가다. 세계 항공 시장 기준으로 봤을 땐 대한항공이 44위, 아시아나항공이 60위로 대형 합병 사례는 아니다. 대한항공은 “공정위 결정을 수용하며, 향후 해외지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