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게임산업, 혁신 없다?

[ET톡]게임산업, 혁신 없다?

“한국게임은 혁신이 없다니까.” 잊을 만하면 들린다.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의하기도 어려운 주장이다. 처음 들은 건 지구멸망이라는 Y2K 공포가 사그라들고 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가 공동 입장하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시절의 한 PC방이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인기는 대단했다. 높은 인기에 스타크래프트 아류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친구는 이런 국산 게임을 할 때마다 혁신이 없다고 화를 냈다. 독창성이 없다는 이유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국산 게임도 충분히 혁신 시스템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진록2'에는 날씨와 풍향 영향을 받는 기후시스템이 있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야 했다. 기우제를 지내고 강물을 불게 하면 적 지원 병력을 차단하거나 수장시킬 수도 있었다. 이 외에도 '천년의신화' 화살, '삼국지천명2' 단축키, '킹덤언더파이어' RTS+RPG, '쥬라기원시전2' 고기, '택티컬커맨더스' 성장, '거울전쟁' 자원과 전직 등 색다른 시스템을 가진 아류가 제법 많았다. 몇 요소는 현재 장르 문법으로 자리 잡기까지 했다.

말싸움하던 동네 PC방이 김범수(카카오 의장), 문태식(카카오VX 대표), 남궁훈(카카오 대표)이 했던 PC방이라는 걸 안 건 아주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훗날 인터넷 게임 산업 혁신가 반열에 오를 이들 공간에서 까까머리 중학생이 혁신에 대해 논하고 있었으니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후에도 한국 게임에 혁신이 없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린다. 그러나 우리나라 업계는 단 한 번도 혁신과 거리를 둔 적이 없다. 게임업계 벤처 신화 종언을 고하는 우려에도 모바일게임 전환에 성공한 신생회사가 줄줄이 나왔다. 신흥 부자가 많이 나오자 사모펀드(PB)도 눈독을 들였다. 승자독식 구조로 재편된 산업이라 성장성을 잃었다는 분석이 많을 때 '배틀그라운드'가 나왔다. 확률형 아이템밖에 못 만든다고 조롱받을 때 '로스트아크'가 세계 1위에 올랐다. 로스트아크 스팀 페이지에는 안내 문구가 쓰여 있다. '우리는 주말 동안 계속해서 보고되는 여러 이슈를 인지하고 있으며, 스마일게이트RPG와 밤낮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사적 표현이겠지만 이 문장에서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비 오는 날 대걸레 들고 서버실을 지키던 김택진, 하루 8만줄 코딩한 송재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성지하이츠 2차 2009호를 배경으로 한 김정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게임은 운용체계(OS)는커녕 오피스 프로그램도 만들기 어려웠던 한국 IT산업을 세계에 알렸다. 그때도 지금도 밤낮으로 노력하는 이들이 있고, 혁신을 선도할 이들이 있다. 확률형 아이템, P2E 매몰은 비난받아도 마땅하지만 업계에 쏟아지는 비난 강도가 지나친 요즘 약간의 응원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면 언제나 그랬듯 우리 게임 업계는 혁신적인 '물건'을 또 내놓을 것이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