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산업 디지털 전환, 기업 입장에서 생각하자

김낙인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주력산업 MD
김낙인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주력산업 MD

“우리끼리 밸류체인을 만들어 새로운 제품 개발과 서로의 성공사례를 공유해야 합니다.”

얼마 전 중소기업 대표와 기술 개발 책임자들이 모인 행사에서 이 모임의 대표가 발언한 내용이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디지털전환 전문가들과 우리나라 제조 산업 디지털전환에 대해 논의했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전환을 바라보는 시각이 각자 다르고, 기업과 소통은 기업 언어·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해답은 앞에서 언급한 중소기업 모임 대표의 발언을 참조해야 한다. 기업 간 협업에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디지털전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바닷속에서 정어리 떼가 단체 유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행태에 감탄한다. 정어리가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개별적으로는 작은 물고기지만 단체 유희로 몸집이 큰 물고기로 보이게 해서 포식자에 대항할 수 있다. 대부분 중소기업은 매출 규모가 작고 단위 부품을 생산하거나 단위 생산 공정을 가지고 있다. 사업적 가치 창출 관점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거나 다양한 제품을 자기 주도적으로 생산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중소기업의 디지털전환 전략은 바닷속 정어리와 같은 생존전략을 모방해야 한다. 유사한 산업 기반을 가진 기업이나 상호 보완적인 기업과 협업해서 규모와 다양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방법은 시스템 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공급 사슬망을 연결해서 전체 공급망 운영 효율화를 창출하는 것으로, 대·중소기업 상생 전략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유사기업 간 협업으로 규모의 경제를 형성해서 새 가치를 만들고 그 성과를 나눠 가지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상호보완적인 기업 간 연계로 애자일한 밸류체인을 만들어서 신상품을 만들어 수요처 다각화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협력은 데이터 흐름, 데이터 통합, 데이터 연계로 중소기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실행 측면에서도 중소기업 디지털전환 추진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정부가 해결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첫 번째는 기업 데이터가 안전하게 보호되고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제도 도입과 데이터 큐레이터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은 보유한 데이터를 자산으로 인식해서 외부 공개를 꺼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중소기업 디지털전환 추진 실태조사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이 경영자 인식 부족, 투자 여력, 전문인력 부족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경영자 인식 부족이라는 것은 투자에 비해 낮은 성과가 예측돼 실제 행동은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충분한 성과가 예측되더라도 중소기업의 특성상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전문 인력 부족 역시 높은 인건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성과와 치러야 하는 비용 차이에 비례해 디지털전환 추진 의지를 보인다. 여기에서 정부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성과 창출은 기업 간 협업 모델을 활용할 수 있고, 기업 비용은 정부 지원 사업으로 낮출 수 있다. 디지털전환 과정에서 기업 시설투자 및 기술개발, 인력 비용을 낮추도록 정부 지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디지털전환에 필요한 기술 해외 의존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큰 부담을 느낀다. 중소기업 디지털전환에 필요한 국내 기술을 개발하고 표준화와 모듈화한 낮은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받도록 해야 한다. 인력 부족 문제도 높은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전문 인력을 상시 보유하는 것보다는 필요시 외부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말 '산업디지털전환 및 지능화 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7월부터는 법이 실행된다. 향후 촉진법을 근거로 실행 가능한 각종 지원 방안이 기업 관점으로 구체적으로 설계될 것이다. 촉진법을 기반으로 우리나라 중소 제조기업이 디지털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김낙인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 주력산업 투자관리자(MD) naginkim@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