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반도체 제조 역량 확대를 위해 장기적으로 수백조원에 가까운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대규모 투자는 반도체 생산거점을 자국 내 두려는 미국과 유럽의 제도적 지원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반도체 기업 투자 활성화를 이끌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 높다.
인텔이 미국 오하이오와 유럽에 향후 10년간 각각 100조원 이상 투자하기로 한 것은 막강한 세제 지원 덕분이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전력투구 중이다. '반도체진흥법안(칩스포아메리카)'이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2024년까지 미국 반도체 제조·장비 시설 투자비의 최대 40%를 세액 공제한다는 것이 골자다. 반도체 기업엔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게 하는 강력한 유인책이다. 미국은 이미 연방 정부와 주정부의 각종 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 TSMC와 삼성전자 공장을 유치했다. '칩스포아메리카'까지 시행하면 글로벌 반도체 기업 투자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은 지난해 상원을 통과했고 다른 법안과 조율, 하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인텔의 애리조나주와 뉴멕시코주, 오하이오주 대규모 투자도 이러한 지원 법안을 염두에 둔 선택으로 보인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미국 내 투자하는 '미국 기업' 즉 인텔 같은 회사에 삼성전자나 TSMC보다 많은 지원을 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럽 투자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은 반도체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반도체 지원 법안을 이달 발표했다. '칩스포유럽'격이다. 10%에 못 미치는 유럽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두배 이상 끌어 올리는 것이 목표다.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유럽의 반도체 역량을 키우는데 집중 지원한다. 기업 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도 뒷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소는 430억유로가 이 법안에 따라 반도체 산업에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텔이 법안의 최대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겔싱어 CEO가 취임할 때부터 이런 공격적 투자는 예고됐다는 시각도 있다. 워낙 천문학적인 투자 금액인 만큼 팻 겔싱어가 CEO를 맡는 것과 동시에 인텔 이사회와 사전 조율이 끝났다는 것이다. 미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정책과 맞물린 결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인텔의 '협업'이 투자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우리 정부도 미국과 유럽에 버금가는 반도체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반특법)으로 산업 육성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업계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위한 세액 공제 등 지원책이 해외에 비해 미약한 수준”이라며 “기업의 투자를 유인할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
-
권동준 기자기사 더보기
-
김지웅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