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기자와 그룹인터뷰를 진행한 로즐린 레이턴 포브스지 시니어 칼럼니스트(덴마크 올보르대 박사)는 망 중립성과 관계된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망 중립성은 모든 통신망 사업자와 정부가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콘텐츠를 이용자 또는 전송방식에 따른 차별 없이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규범이다. 망 중립성의 핵심 가치 가운데 하나는 '급행료' 금지다. 통신사가 구글·넷플릭스와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추가 요금을 받고 콘텐츠를 경쟁사보다 우선 처리해 주는 게 급행료다. 이를 허용한다면 인터넷 시장 질서는 힘센 자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될 것이 뻔하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소송에서 망 중립성 원리를 차용했다. 통신사가 독점 지위를 바탕으로 최종 이용자는 물론 콘텐츠 제공사업자(CP)로부터도 통행세를 걷으면 트래픽 전송료를 지급 여력이 있는 CP 콘텐츠만 남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통신사는 '문지기'로서 독점 지위를 바탕으로 통행세에 따라 콘텐츠 전송 품질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중소 CP 성장동력과 혁신역량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레이턴 박사는 망 중립성을 뒤집고 '콘텐츠 중립성' 개념을 제안했다. 망에 모든 콘텐츠를 차별 없이 전송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한다면 콘텐츠제공사업자(CP)도 공정한 방식으로 망을 동등하게 이용해야 한다.
레이턴 박사에 따르면 정작 콘텐츠 중립성을 해치는 것은 구글·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CP가 통신사 데이터센터에 설치하는 오픈커넥트어플라이언스(OCA)와 같은 설비다. 대형 CP는 OCA가 데이터 트래픽 부담을 일정 부분 줄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OCA 설치에 소요되는 통신사 데이터센터의 물리 공간, 장비 등은 오직 넷플릭스 콘텐츠만을 안정적으로 전송하는 데 사용된다. 넷플릭스는 통신사에 사용료도 내지 않는다. 다른 중소 CP는 통신사 망에서 OCA와 같은 설비에 접근하지 못한 채 구글·넷플릭스가 내지 않는 망 이용 대가까지 부담해야 한다. 넷플릭스가 돈을 내지 않으면 통신사는 망 유지를 위해 이용자 또는 다른 CP로부터 부족분을 충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 통신사는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 회피로 연간 약 1000억원의 초과이윤을 확보한다고 주장했다. 데이터트래픽으로 따지면 구글은 3000억원 정도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통신사의 '엄살'이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건 국내 CP가 내는 망 이용대가를 구글과 넷플릭스는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CP 가운데에서는 웨이브가 연간 약 200억~300억원의 망 이용대가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CP와 국내 CP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CP 설비 능력 격차와 통신망의 지배력 격차로 인해 중소 CP의 혁신 역량을 저해하는 상황은 오히려 초대형 글로벌 CP가 초래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통신사도 초대형 글로벌CP로부터 망 이용대가를 받게 된다면 중소 CP에는 합리적으로 망 이용대가를 낮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시장 질서에 입각한 규제개혁과 산업 진흥을 중시한다고 했다. 시장지배자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 최소한 계약이라도 체결하라고 의무화한다면 궁극적으로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방식의 산업 진흥책이 될 수 있다. 콘텐츠 중립성은 아직 정제된 개념은 아닌 듯하다. 통신망과 관련한 경제에서 꼭 살펴볼 필요가 있는 주제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