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문가들은 정부가 연료비 조정요금 인상을 매번 유보하면서 '원가연계형 전기요금 체계'(연료비 연동제)가 무력화됐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현행 상태로는 한국전력공사가 누적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실상 '부도'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친시장주의'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현행 전기요금체계를 시장 상황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전은 2분기 연료비 조정요금을 발표하면서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33.8원으로 산정했다. 2분기 실적연료비는 기준연료비 ㎏당 338.87원 대비 72.6% 상승한 584.78원으로 책정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2분기 연료비 조정을 유보하면서 한전은 ㎾h당 33.8원의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정부와 한전은 지난해 12월 발표에 따라 ㎾h당 전력량 요금 4.9원과 기후환경요금 2.0원 인상분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는 ㎾h당 총 6.9원이 인상되는 효과로, 한전이 감당하는 현행 연료비 손실분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에너지 전문가는 현행 연료비 연동제가 지난해부터 무섭게 치솟는 전기요금 원료비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번에 연간 단위로 책정하는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은 조정했지만 분기마다 연료비를 반영하는 '실적연료비'(연료비 조정단가)는 조정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수개월 간 급격히 오른 연료비를 현행 전기요금에 담지 못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기준연료비는 작년 기준 연료 가격이 재작년과 비교해서 얼마나 올랐는지를 책정하는 것”이라면서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오일 쇼크' 수준으로 오른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전이 연료비 연동제 미작동으로 인한 누적 손실분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다. 증권가에서는 한전이 올해 20조~30조원 수준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5조8601억원 영업손실(연결기준)로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바 있는데 올해는 이보다 4배나 많은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행 상태면 올해 하반기 발전사에서 사들이는 전력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실상 '부도' 상태에 놓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부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전력시장 정산 기준을 정비해서 발전비용 중복 정산 요인을 제거하는 등 방안을 우선 추진하고,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등도 검토한다. 하지만 시장과 연계한 전기요금 체계는 등한시한 채 정부 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거버넌스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정부가 표방하는 친시장주의에 걸맞은 독립된 전기요금위원회 구성 등이 과제로 제기된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는 “현행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 내에서는 현실적인 가격 제한폭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독자 권한을 갖고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독립적인 규제위원회를 꾸려야 한다”고 밝혔다. 박종배 교수는 “현행 연료비 연동제는 원가를 반영하기 위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전기요금 제도”라면서 “'도매시장 가격 연동제' 같은 선진화된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한국전력 연료비 조정단가 산정내역(실적연료비·기준연료비는 ㎏당, 연료비 조정단가·결과는 ㎾h당)
자료:한국전력공사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