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빌리티 업계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상생'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7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성장 방향성의 핵심 가치로 상생을 내세웠다. 올해 안에 계열사를 30~40개 정리하고 5년 동안 상생기금 300억원을 조성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도 제시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회심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모빌리티 분야에서 1년 가까이 상생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대리운전 업계'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5월 말 전국대리운전연합회가 동반성장위원회에 대리운전업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하면서 상생안 협상 테이블이 꾸려졌다. 대리운전연합회를 비롯해 카카오모빌리티·티맵모빌리티가 협의를 이어 가고 있다. 다음 달이면 어떤 식으로든 상생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상생(相生) 논의는 서로가 함께 발전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지만 밑바닥에는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갑과 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는 것도 상생과는 거리가 멀다. 대리운전 업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는 것은 '더불어 잘사는 대리시장'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문제는 대리운전 업계의 상생안 협상 테이블에 '진짜 약자'가 초대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중소 대리운전 전화 콜 업체 피해도 적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진짜 약자는 대리운전 기사라는 의견이 많다.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사업자끼리 논의해서 만든 상생안이 과연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렇듯 상생 문제를 둘러싼 뫼비우스의 띠는 낯설지가 않다. 지난 2013년 제과점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바 있다. 가맹사업을 하는 제과점 브랜드는 전년 말 점포 수 기준으로 2% 이내로만 신규 출점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미 몸집을 불려 놓은 파리바게뜨는 매장을 연간 약 70개 열 수 있었지만 경쟁사인 뚜레쥬르는 20여개만 출점이 가능했다.
이후 펼쳐진 상황은 기대를 크게 비껴 갔다. 출점 제한 규제는 파리바게뜨의 시장 독과점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다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고, 소비자 후생을 위한 업체 간 경쟁은 확연하게 시들해졌다. 동네 빵집은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 틈바구니를 외국계 기업들이 스멀스멀 파고들어 와 사세를 확장했다. 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동반성장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내놨다.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결론도 포함됐다. 기존 서비스 몇 가지를 철회하고 시장점유율을 묶어 두는 식으로 칸막이를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대다수 국민들도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컨설팅 업체 매킨지에 따르면 세계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2015년 약 33조원에서 2030년에 약 1680조원으로 약 50배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기술(IT)과 전통 모빌리티 산업 융합으로 하루라도 빨리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존재감을 보여 줘야 할 시점에 '진짜 약자'도 없는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1년이 넘도록 시간을 보내는 행위는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 협상 테이블을 한 꺼풀만 벗겨 봐도 진짜 약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아무도 몰랐는지도 의문이다.
“대리운전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이 오롯이 법으로 시장점유율을 보호받으려 하고, 정작 기사들에 대한 처우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대리운전 기사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초대받지 못한 약자들의 처절한 외침이기도 하다. 진짜 약자들이 어떤 이유로 상생 테이블에 초대받지 못했는지 이제는 동반위와 협의 주체들이 물음에 답할 차례다.
이선하 공주대 도시융합시스템공학과 교수 seonha@kong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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