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회·지배구조(ESG)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과 노동 이외에 어떤 투입 요소들이 자본시장에 의해 배려받아야 하는 지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지난 25일 한국로봇산업협회에서 열린 정보통신 미래모임에서 혁신기업으로 초청된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가 내린 ESG 정의다. 그는 ESG를 '고장난 자본주의의 수정 형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ESG는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시장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순환경제'를 꼽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생산해서 쓰고 폐기해 온 '선형경제' 중심이었다. 이러한 선형경제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폐기물을 기하급수적으로 양산했다. 이러한 단편적인 소비생활에서 벗어나 폐기물을 회수·가공해 재생산하는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절실해졌다.
순환경제에서는 결국 생산자들이 다시 구매자로 되는 구조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순환경제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다. 아디다스 운동화는 2018년부터 플라스틱 폐기물로 운동화를 만들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밑창부터 신발끈까지 100% 재활용이 가능한 러닝화를 만든다. 낡아진 신발은 아디다스가 회수해 새 운동화 제작에 다시 활용한다. 에비앙은 2025년까지 재활용된 병으로만 신규 상품을 제조하겠다고 선언했다. 코카콜라도 2025년까지 모든 음료 용기를 100%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패키지로 교체한다.
국내 기업들도 이같은 ESG 경영에 적극 나서면서 폐기물 순환경제 구축에 나서고 있는 수퍼빈에 손길을 보내고 있다. GS칼텍스, 롯데케미칼, SK종합화학 등 국내 정유·화학업계 대표주자들이 대거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국내 굵직한 기업들도 줄이어 고객사로 합류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 제2 신사옥 전층에 수퍼빈의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이 적용됐고,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CGV, 세븐일레븐,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에도 도입됐다. 식품 배달업계와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배달의민족과는 일회용 배달 용기 회수 및 재활용 프로세스 구축을 진행하고 있고, 제주 삼다수와는 제주 전 지역에 네프론 설치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회사 설립 초창기에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네프론이 구축됐지만 최근에는 기업들의 ESG 경영 활동이 확산되면서 도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수퍼빈의 네프론은 현재 700만개 이상의 생활폐기물 이미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지 기반으로 자원의 외형을 학습하고, 축적된 학습 데이터에 따라 자원 종류를 판단해 수거한다. 또 네프론은 이용자들에게 현금화 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해 준다. 이미 지난해 누적 이용자 35만명을 넘어섰다.
오는 8월에는 경기도 화성시에 짓고 있는 4200평 규모의 소재공장도 가동한다. 화학적 공정을 최소화한 친환경 폐기물 가공 공정으로 설계했다. 국내 폐기물 업계에서 '순환경제'를 구현한 첫 기업이 된다.
김 대표는 “다양한 사례를 기반으로 실증 효과는 입증 완료했고, 올해 소재공장까지 가동하면 규모의 경제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장기적으로 가공된 폐기물로 화학소재를 만들거나 탄소배출권을 판매하는 등 추가적인 부가가치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퍼빈은 이달말 시리즈B 브리지 투자라운드를 마무리지으면 2000억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다. 2~3년 내 유니콘 기업으로의 도약이 목표다.
한편 정보통신 미래모임은 올해부터 매달 격주로 국내 혁신기업 대표를 초청, 타운홀미팅 형식으로 소통 자리를 가진다. 앞서가는 기업의 혁신 사례를 생생하게 공유하고, 정보통신 업계 전문가들과의 심도있는 논의로 규제 개선 및 발전 방안 등을 모색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