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1 애플파크 웨이' 미국 새너제이 출장길에 우버를 타고 숙소와 지척인 애플파크를 가 봤다. 마치 거대한 우주선이 숲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처럼 기묘한 느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건물 주변에 워낙 높은 나무가 많아서 건물 형상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애플이 애플파크 내외부에 1만 그루 넘는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가려져 있으니 더 신비로웠다. 입구부터 철저한 신원 확인과 함께 높은 철창으로 안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방문객 센터 언저리만 맴돌 수밖에 없었다. '둥근 고리' 모양으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옥을 만들어 두고선 정작 그 누구도 사옥을 제대로 볼 수 없도록 만든 애플의 철저한 비밀주의가 야속했다.
애플은 사옥만큼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까다로운 기업이다. 협력사 공장에 감시 카메라를 다는 건 예삿일이다. 생산 근로자에 대한 범죄 이력 조사도 한다. 협력사가 계약 내용이나 스펙을 유출하면 수백억원을 물어내라는 조항도 계약에 담는다. 이야기를 듣기 가장 어려운 기업도 애플이다. 부품사는 애플에 A자만 나와도 입을 꾹 닫는다. 그래도 애플이 이메일을 보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시간 안에 반드시 답장을 보낸다. 애플의 호출이라도 오면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서 미국으로 '날아간다'는 부품업계 CEO의 이야기를 결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부품사가 세계에서 가장 거래하고 싶어 하는 기업은 애플이다.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 IT 기업이다. 세계 브랜드 가치 1위, 글로벌 시가총액 1위 명성을 쉽게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줄 서서 사게 만드는 아이폰에 전자부품을 공급한다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보여 준다. '아이폰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라는 한마디로 설명이 끝난다. 수백억원을 물어내야 할 위험을 감내하고라도 어떻게든 애플과의 거래를 성사하려는 노력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반갑게도 최근 애플이 한국 부품업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과 생산 불안정 등을 이유로 중화권 거래 비중을 점차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부품업계의 실력도 밑받침됐다. 최근 한 부품 중견기업도 애플과 첫 거래를 텄다. 반도체 후공정 과정에서 소모품이자 필수품인 소켓과 프로브카드 전문 기업이다. 중화권 소켓과 프로브카드를 써 온 애플은 한국 부품사로 눈을 돌렸다. 한국 기업이 빠른 납기 대응과 생산 안정성으로 애플에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한국 부품업계의 관심은 이제 '애플카'에 쏠려 있다. 모 기업은 애플과 거래를 위해 보안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곳으로 사옥을 옮겼다. 애플카는 아이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공급망관리(SCM) 체계를 구성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애플카 실무진은 지금도 한국을 드나들며 부품 생태계를 훑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기업이지만 과정을 겪어 내면 일약 세계적인 부품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앞으로도 애플과 거래를 트는 한국 부품사가 더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 신비에 싸인 애플파크를 당당히 드나들 국내 부품업계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새너제이(미국)=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