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16>빅 콜리전(Big Collision)

빅뱅. 우주가 오래전에 대폭발로 시작됐다는 이론이다. 지금은 이것이 우주 기원에 대한 정설이 된 듯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빅뱅이란 명칭도 이것에 반대한 누군가에 의해서 왔다는 설도 있다. 어느 토크쇼에서 그는 “그럼 우주가 어느 날 펑하고 생겼다는 거군요”라고 비꼰 모양인가 보다.

논쟁은 이 이론을 처음 주장한 물리학자에게도 쏠렸다. 그는 학자 겸 신부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이론이 천지창조론을 상기시킨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설득해야 한 곳은 과학계와 교황청 모두인 셈이었다.

혁신이란 어떤 것일까. 질문을 좀 바꿔서 혁신의 최대 값엔 무엇이 있을까. 우주를 만든 빅뱅이나 핵융합로의 플라스마 안에서 튀어나오는 중성자의 에너지 같은 그런 순간을 혁신은 해석해 낼 수 있을까.

코닥을 한번 떠올려 보자.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이 내놓은 건식 카메라는 코닥을 낳았고, 꼬박 100년을 최고 기업으로서 흔들림이 없었다.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는 최고 광고 문구의 하나였다. 1888년에 만들어진 슬로건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기업이 갑작스레 실속하기 시작한다. 물론 징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1997년 매출은 10%가 떨어지고, 짐 콜린스의 예언처럼 코닥은 잘못된 선택을 몇 차례나 반복한다. 그리고 2004년 다우존스지수에서 74년 만에 제외된다.

누군가 코닥의 몰락이 기술 탓은 아니라고 평한다. 많은 이는 이를 두고 기술 변화가 코닥의 운명과 관계없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코닥이 디지털 기업이 된 것도 이것을 이해한 것도, 심지어 마음에 새긴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코닥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줄어든 매출을 채울 뭔가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 빠져서 이것저것 해댄다. 그리고 겨우 이 새로운 기술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을 때 이미 디지털 카메라는 코닥을 다시 세울 그런 새로운 제품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보물상자를 누구보다 먼저 열었음에도 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채 허둥댔다. 코닥은 기술이 만드는 밀물이 얼마나 큰 쓰나미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 달려오는 파도를 놓쳤고, 물결에 휩싸여 떠내려가는 동안 발버둥쳐 보았다.

하지만 무한한 자원과 최고 경영진을 둔 기업조차 물결을 헤쳐 나올 수는 없었다. 기술 변화는 기존의 기술 위에 세워진 거의 모든 아키텍처를 와해시켰다.

누군가는 코닥과 다른 많은 위대한 기업의 몰락을 바뀐 아키텍처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 말한다. 언뜻 그 이전과 차이가 없어 보이고, 변화는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에 빅뱅 혁신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코닥의 실패도 그 자리를 채운 승자의 환호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경영의 신이라 불린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커버를 벗긴 JVC와 소니의 VCR를 보고는 VHS 방식의 구조가 훨씬 간단하다고 평했다고 한다. 소니와 베타맥스 방식에 장점이 있었지만 서서히 사라졌고, VHS가 지배적 디자인으로 자리 잡아 갔다.

빅뱅 혁신의 숨겨진 열쇠는 어디선가 달려와 내게 부딪쳐 오는 어떤 기술 그것인 셈이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