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약 3주가 지났다. 그 사이 윤석열 정부는 대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파격의 연속을 보이고 있다.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일반 국민과 같이 출퇴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였고, 11일 만에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불상의 발사체'와 같은 용어를 쓰던 국방부도 정상화됐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가입 문제와 같은 국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박성 발언에 당당하게 대응하는 외교부도 다시 나타났다. 가히 산적한 난제 앞에서 이번 정부가 목표로 하는, 세계 10위권 국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 걸맞은 진정한 '글로벌 중추 국가'(Global Pivotal State)로 가는 첫걸음을 잘 떼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한 상황이다. 민간 분야에서의 활약으로 K-컬처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나 정부 차원의 국제외교는 지난 5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주변 강대국은 물론 우리보다 국력이 한참 뒤처진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업적 쌓기용 대북 유화정책에만 매몰되어 국제적 정치력을 낭비하였을 뿐 대북 문제에 대한 실마리는 풀지 못하였다. 또 2017년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촉발된 중국의 내정간섭 및 경제압박 또한 친중적인 행보를 거듭하였음에도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한·미 동맹의 굳건한 신뢰만 흔들리는 결과만을 발생시켰다.
벌써 발발한 지 100여 일에 다다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건국 초기 북한의 침략을 국제 지원으로 이겨낸 역사가 있음에도 러시아와의 무역 관계 등을 운운하며 다른 우방국들의 공조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4월 11일 지원을 호소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냉대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자리에 있던 국회의원들은 오직 폴란드 난민촌에 있는 재외동포 문제만을 언급하는 등 국민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필자마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작금의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목표로 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몇 가지 필수적 주요 과제들이 있다.
먼저 국익을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초당적인 논의와 합의에 기초한 전략 수립과 함께 강력한 대외정보력이 필요하다. 설득의 예술이 극대화되는 외교무대에서 우리는 상대방이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제안으로 무장하고 상대와 협상장에서 만나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와 상대방의 니즈(Needs)를 정확히 판단해야 하며, 그를 기초로 우리가 얼마만큼 타협(Compromise)해 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를 위해선 내부적인 합의는 물론 상대국 사정까지 환히 꿰고 있어야 한다. 지난 5년 동안의 외교에선 이러한 점이 실종되었기에 외교적으로 대북 관계를 비롯해 곳곳마다 경색 국면만이 지속된 것이다.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다음 과제는 국제적인 이슈에 대한 침묵과 외면에서 벗어나 필요한 곳엔 목소리를 내고, 해야 하는 일은 국제적 연대를 통해 행동에 옮겨야 한다. 대한민국은 외부의 침략을 국제적인 도움을 통해 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킴과 동시에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적 발전과 번영까지 이뤄낸 국가이다. 그런데도 홍콩, 신장 위구르, 티베트, 우크라이나 등의 인권 이슈 앞에서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부는 침묵하고 외면했다.
대한민국이 다른 국가들의 자유민주주의와 주권 수호에 침묵하고 외면한다면 누가 글로벌 중추 국가로 인정하겠는가. 특히 함께 피를 흘려 준 우방국들의 눈에 이러한 모습이 계속 비친다면 굳건하게 지켜오던 동맹국 간 신뢰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특히 미-중 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경제 및 안보가 하나로 묶여 블록화가 되어 가는 현 상황에서 더욱이 우리는 만국 보편적 이념을 지키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인 지지 없이 글로벌 중추 국가는 허상일 뿐이다.
대북 과제 또한 내부적이고 근시안적인 정책 수립에서 벗어나 글로벌 중추 국가의 위치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 문제를 터널 비전(Tunnel vision)에 갇힌 채 일괄적 강경책 또는 굴종적 유화책을 정권마다 바꿔 가며 쓰거나 특정 이슈에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강대국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동안 유럽 등 전통 외교 강국들은 북한 문제에 대해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 주창한 투트랙식 접근을 이미 해 오고 있었다. 북핵 및 북한 인권 문제에서는 혹독한 비판과 제재를 가하면서도 인도적 지원은 끊임없이 진행해 왔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북한을 대해야 한다. 특히 최근 탄도미사일 도발과 코로나19 발생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북한의 상황은 우리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 손에는 핵과 ICBM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버드나무 가지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북한의 체질에 맞는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제시해야 한다.
상대가 있는 외교무대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기 위해선 우리만 되겠다고 천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각각의 사안에서 상대국에 우리의 일방적인 희망 사항 제시를 넘어 철저한 정세 분석과 내부적 합의를 통해 장기적이고 건설적인 외교 전략·전술을 짜고 실행해야 한다.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을 우려하는 데 함몰되어 큰 그림을 망치던 과거를 넘어 글로벌 중추 국가에 따르는 책임, 다시 말해 세계의 안정과 평화·발전·번영에 이바지하는 일을 해야 세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필자 또한 이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onekorea2025@gmail.com
태영호 의원은
평남 평양 출신으로, 서울 강남구갑 국민의힘 소속 21대 국회의원이다. 북한 외교관으로서 우리나라에 귀순한 뒤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중국 베이징외대 영문과 출신이며, 덴마크·스웨덴·벨기에 등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2016년 탈북 이전에는 주영 북한 공사로 활동하며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서열 2위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귀순 이후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 문재인 정부 통일부 국제안보행정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외교안보특별위원회 소속으로서 주영 북한 공사로 있으면서 축적해 온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