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얼마 되지 않아 백기를 들 것으로 보인 우크라이나가 3개월 이상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을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일부 도시를 탈환하는 등 결사 항전의 의지로 맞서고 있다. 압도적 군사력을 앞세워 단숨에 우크라이나를 제압할 것으로 예상된 러시아는 체면을 구기고 있다. 전술 실패와 무기 성능 저하로 전장 곳곳에서 장성급 지휘관을 비롯한 수많은 전사자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 상황은 6세기 중국 통일 후 고구려와 대규모 전쟁을 벌인 수(隋)와 닮았다. 당시 수는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와 충돌했다.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력을 앞세웠지만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막대한 병력·물자 손실을 봤다. 특히 2차 원정에서는 살수(현 청천강)에서 을지문덕 장군에게 역사에 남을 대패를 당했다. 100만명 이상이 출병해서 고작 3000여명만 돌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수는 이후에도 두 차례 더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고구려에 대한 집착이 국가 재정 위기와 내부 불만을 촉발하면서 결국 수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최근 러시아 극동연해 지역의 한 지방의회 야당 의원은 본회의 도중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요구했다. 그는 “군사 작전을 중지하지 않으면 (러시아) 고아가 늘어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러시아 남단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재판소는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출정 명령을 따르지 않은 국가친위대원 115명에 대한 제대 처분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러시아 당국이 참전을 거부한 병력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의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관련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고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황이 알려지면서 녹록지 않은 모양새다. 마치 고구려 침공 실패 후 온 나라의 민심이 들끓기 시작한 수를 보는 듯하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주체가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평행이론'이 떠오른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철군을 끌어내기 위해 강도 높은 경제 제재에 나섰다. 러시아는 전쟁을 지속할수록 글로벌경제 체제에서 고립된다. 만일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기대 이하의 군사력이 노출된 데다 독재국가 이미지만 두드러지는 등 득보다 실이 많다. 이제라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서 실리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을지문덕 장군은 '살수대첩' 직전에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시 한 편을 보냈다. 푸틴 대통령에게 이 시의 마지막 구(句)를 꼭 전하고 싶다. “만족함을 알고 멈추기를 이르노라.”(知足願云止)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