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세가 도무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서방의 경제제재와 여기에 맞서는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중단 여파로 천연가스, 석탄, 석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텍사스의 주요 액화천연가스 수출 터미널이 화재로 당초 예상보다 더 오래 폐쇄될 예정이어서 공급 감소 위기는 가중될 전망이다.
사실 에너지 공급망 위기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핵무기를 제외한다면 러시아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스와 석유다. 특히 유럽의 러시아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핀란드,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는 천연가스 수요의 100%를 러시아에서 공급받는다. 수입량으로 보면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최대 수입국은 독일이다.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잠그면 유럽은 '엄혹한 겨울'을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우리나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공급망 위기 장기화는 무역수지 악화와 소비자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3개월 동안 에너지수입액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약 223억달러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에너지의 94%가량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은 곧바로 무역수지 적자 폭 확대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물가 중에서 식료품값과 함께 체감도가 가장 높은 것은 기름값이다. 국내 경유 가격이 리터당 2100원 선을 돌파하면서 직장인, 자영업자, 농어민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치솟은 유가에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워 고등어잡이 대형선망 선단도 출어를 포기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고유가 충격이 곡물과 해산물 가격 상승을 가속화 하는 복합위기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에너지 공급망 위기는 국제사회의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추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번에 다시 확인된 것은 에너지야말로 지정학적 권력 이동의 핵심 동인이라는 점, 그리고 세계화된 에너지 환경에서 에너지 안보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탄소중립 국제주의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제로섬 관점이 득세하면서 일부 국가에서 석탄의 귀환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앞당기기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목표를 강화하려는 유럽연합(EU)과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선택지가 많은 것은 아니다. 고유가 장기화에 대비해 단기적으로는 조세감면 조치를 확대하는 등 충격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독립의 관점에서 정책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관건은 고유가 여건에서 에너지효율 개선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얼마나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느냐이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원별 장단점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최적의 국가 재생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바이오가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바이오가스는 미생물이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음식물쓰레기, 하수 찌꺼기, 가축분뇨 등 유기성 폐자원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수소와 메탄과 같은 가스를 말한다. 바이오가스는 주로 발전이나 도시가스 공급에 쓰이지만, 정제공정을 거치면 최근 각광을 받는 그린수소 생산과 공급으로까지 활용처를 다변화할 수 있다.
바이오가스는 다른 재생에너지원과 비교해서도 장점이 많다. 음식물쓰레기와 가축분뇨가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 발생하는 수질오염을 막고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갖는다. 과거에는 가동 중 발생하는 악취와 낮은 경제성 탓에 보급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악취 제거기술이 발달하고 경제성 문제도 개선되면서 유력한 재생에너지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2종 이상의 유기성 폐자원을 통합 처리하면 소화효율이 25% 증대돼 바이오가스 생산성과 경제성이 높아진다. 최근 한국환경공단은 우리나라 기관으로는 최초로 두바이에너지최고위원회(DSCE)가 주관하는 '2021년 아랍에미리트 에너지어워즈(EEA)'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충남 서산시에 가축분뇨, 분뇨, 음식물 폐기물, 하수 찌꺼기 총 4가지 유기성 폐자원을 통합 처리하는 바이오가스 생산시설을 성공적으로 설치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산 바이오가스 시설은 하루 320톤의 유기성 폐자원을 통합 처리한다. 유기성 폐자원을 처리하기 위해 개별 처리시설을 만들 경우 약 630억 원 예산이 소요되지만 통합시설 설치로 약 160억 원 사업비가 절감됐다. 지난해 생산한 바이오가스의 44.3%는 한국전력공사에 판매하고, 나머지는 건조연료설비 등에 사용해 연간 10억원 이상 연료비 절감과 486톤 메탄 회수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서산시 성공 사례는 시범사업을 앞두고 있는 서울, 순천, 구미, 청주 등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유기성 폐자원을 활용한 바이오가스 생산은 탄소중립의 유력한 대안이다. 우리나라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은 하루 1만4300톤, 가축분뇨 발생량은 14만톤에 달한다. 이들이 더 이상 '쓰레기'나 '폐기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바이오가스 생산시설이 입증하고 있다. 폐기물과 에너지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 바이오가스의 잠재력에 대한 인식 전환을 기대한다.
<필자 소개>
안병옥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은 환경부 차관 출신으로, 환경·기후 변화 분야에서 이론과 실천력을 겸비한 학자로 꼽힌다. 안 이사장은 서울대 해양학 학사, 해양생물학 석사,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에서 응용생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제16대 환경부 차관 등을 지냈다. 이후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 국회 기후변화포럼 부설 기후변화정책연구소장, 환경보전협회장을 역임하고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안병옥 한국환경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