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 전기차 업체가 연이은 배터리 가격 인상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 이들이 주력하는 초소형·소형 전기차 시장 특성상 제조원가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에도 배터리 가격의 추가 인상이 예상됨에 따라 중소 전기차 업체의 수익성은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전기차 업체가 구매하는 배터리 가격은 전년 대비 약 30% 올랐다. 제조원가에서 많게는 50%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배터리 가격이 치솟았다.
배터리 가격 급등은 배터리 광물 가격 인상과 수요 증가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지난 20일 기준 2만5230달러로 전년 대비 36.47% 상승했다. 세계적인 전기차 생산 증가로 높은 수요가 지속돼 기존 가격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주요 공급사의 배터리 가격 인상이 예정된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초소형 전기차 업체들은 구매 물량이 적다 보니 협상력도 열위에 있어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초소형 전기차 업체는 쎄보모빌리티, 디피코, 스마트솔루션즈, 마이브, 대창모터스, 이브이케이엠씨 등이다. 이들 기업은 초소형 전기차, 소형 전기차, 1톤 전기트럭 등을 판매한다. 무엇보다 차량 가격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장이다.
현재 완성차 대기업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에서 원가를 절감하고 판매가격을 조정, 배터리 가격 인상분을 일부 상쇄한다.
반면에 초소형 전기차 업체는 대부분 규모가 영세해 늘어난 제조원가를 메워 줄 다른 사업이 마땅치 않다. 배터리 가격에 맞춰 차량 가격을 인상하기도 어렵다. 시장 초기 단계여서 자칫 소비자들이 초소형 전기차를 외면할 우려도 있다. 국내 초소형 전기차 1위 업체 쎄보모빌리티는 이달 일부 스펙을 강화한 '2023년형 쎄보C'를 내놨지만 가격은 올리지 않았다. 소상공인, 영세사업자 등이 주요 구매자라는 점에서 회사가 비용 부담을 감내하기로 했다.
일부 업체는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졌다. 디피코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난 20일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100억원 자금을 조달, 한숨을 돌렸다. 디피코는 국내 중소 전기차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차체·도장·조립 공장을 모두 갖춘 회사다. 그동안 공격적 투자를 진행했으나 판매량이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당장은 전기차 업체들이 제조원가 부담을 떠안겠지만 배터리 가격 안정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으로 차량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
국내 초소형·소형 전기차 시장의 옥석을 가리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업체 가운데에는 값싼 중국 전기차를 수입해서 국산 배터리만 장착해 판매하는 업체도 있다. 지금까지는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 확보가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기술 개발 등 추가적인 원가 절감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술 내재화는 필수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초소형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배터리 업체들이 기술력 없는 업체에는 공급을 꺼리는 분위기”라면서 “앞으로 기술력이 없는 중소 전기차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