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8월에 1994학년도 대학 입학을 위해 처음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이제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된다. 대한민국 입시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시행된 시험이기도 하다. 역사와 전통이 있다면 노하우를 자랑하는 시험이어야 하지만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문제점만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상 초유의 공란성적표, 소송,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사퇴 등 갖가지 문제를 불러온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오류로 정점을 찍었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개선안 발표 후 첫 시험인 6월 모의평가에서 오류가 또 나왔다. 평가원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출제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검토위원을 늘렸는데도 데도 외부 전문가와 전문학회가 이구동성으로 오류를 지적한 부분을 누구도 잡아내지 못했다. 고난이도 문항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헛웃음을 자아냈다.
단편적으로는 출제위원들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이고, 더 나아가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책임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30년 악순환으로 쌓여 있던 문제가 곪아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30년 노하우는 오히려 사교육에 쌓여 문제 풀이 기계를 양산해 왔다. 출제진은 이를 피해 문제를 꼬고 꼬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학력고사의 단순 암기 능력에서 벗어나 사고력을 측정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이제 창의성과 사고력보다 문제풀이식 교육을 유발하는 시험이 됐다. 문제를 어렵게 출제하니 더욱더 문제 풀이에 최적화된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큰 혜택을 봤다. 결국 지난해에는 역대급 불수능이 됐고, 유일한 만점자는 학원이 배출했다. 사교육에서 다루지 않았을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급기야 출제 오류까지 나왔다.
교육 당국의 태도는 가관이다. 출제 오류 관련 소송에서 평가원은 문항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정답을 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라고 항변했다. 과정을 중시해야 하는 책임기관이 할 소리가 아니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이과 통합과 보정 점수로 인한 유불리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통계적으로 보정을 통해 균형을 맞출 수는 있지만 그 그룹 안에서 개개인이 직면할 유불리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평가원은 오히려 이런 시각 자체가 문·이과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를 공부하는 공대(이과)와 철학을 공부하는 문과가 대학에서는 버젓이 구분되어 있는데 시험에서는 그걸 벗어나라고 하는 꼴이다.
교육부는 내년도 수능제도 개편안을 연구하고 초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고교학점제에 맞춰 바뀌는 2028학년도 대입제도와 수능 계획은 수능예고제에 따라 2024년에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별력을 갖춘 평가, 사교육이 접근하지 못할 문제에 집착하면 30년이 아니라 40년, 50년 악순환만 반복할 뿐이다. 자잘한 문제점을 적당히 보완하려 하기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솔직하게 직면하고 분석해야 할 때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
문보경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