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겨울(AI Winter).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줄었던 한때의 기간을 일컫는다. 원인이야 여럿이겠지만 마이클 제임스 라이트힐 보고서는 그 가운데 하나다. 라이트힐은 1973년 영국 의회로부터 AI 연구 상황을 평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는 AI 연구가 “위대한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후 AI 연구는 한동안 멈춰 선다. 공교롭게 이런 분위기를 뒤집은 건 일본의 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였다. 인간처럼 대화하고, 언어를 번역하고, 그림을 해석하고, 인간처럼 추론하려는 목표는 대개 성공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본다. 물론 그 후로도 몇 번의 하이프 사이클을 온전히 거쳐야만 했다.
혁신이 기억을 가졌다면 분명 수많은 환호와 좌절을 목격했을 것이다. 어떤 기술은 기대의 정점에서 무너져 내려 환멸의 늪을 온전히 통과해야 하기도 한다. 물론 기업에도 긴 인고의 시간이 남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몇몇 기업은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는 여정에서 무얼 얻게 될지 보여 주기도 한다. 푸른색 대문자로 쓴 브링스(Brinks)란 로고를 기억한다면 그건 아마 현금수송차를 본 기억인지도 모른다. 실상 1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했지만 최고 기업이 된 것은 아니었다. 홈 시큐리티 시장에선 겨우 2% 남짓 차지할 뿐이었다.
어떻게 고객 만족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자신이 가진 서비스 정보를 떠올린다. 2020년 가을, 고객센터부터 인공지능을 적용해 본다. 그러자 많은 변화가 가능했다. 하루 몇 건뿐이던 고객 맞춤식 서비스 제안은 하루 5만 건까지 늘어난다. 반년 만에 사용자당 서비스 패키지 가격은 거의 두 배로 증가한다. 물론 수익도 10% 가까이 늘어난다.
어떤 기업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되던 공간을 없애는 것이 목표였다. 홈디포, JP모건 체이스, 스타벅스, 나이키처럼 예전 같으면 서로 비슷할 구석 하나 없는 기업들이 이런 목표만큼은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동조화는 얼마든 흔해졌다. 소비자를 대면하는 기업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묶어 끊어짐 없는 옴니채널 경험을 만드는 게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고객 데이터를 대규모로 캡처·분석하고, 고객의 바람을 이해하고 재형성하고 최적화하고 맞춤화하는 기술이 근저였다. 그리고 기업들은 점점 빅테크라고 부르던 기업이 갖고 있던 역량을 닮아 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자체가 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닷컴 버블을 기억하는 것처럼 오래전 누군가는 철도 버블이란 걸 기억할 것이다. 1840년대 영국에선 새로운 철도 회사 설립을 위한 의회 법안이 통과되었고, 무려 1만5000㎞가 넘는 건설계획이 나온다. 철도 주식이 폭등하고, 이 열풍은 1846년에 정점에 이르러서 마침내 버블이 터진다. 대부분 기업은 파산하거나 인수된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 같은 세상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기업들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찾는 자신만의 여정에 나서고 있다. 물론 분명한 승자와 패자, 여정을 마치지 못한 채 들판에 남겨진 누군가도 있겠다. 하지만 결론이 어떻든 이 여정의 끝에는 지금과 다른 기업들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 여행객들에게 받아들 안내서의 한 줄이 온전히 바뀌어서 돌아오라고 쓰여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