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Wormhole). 두 시공간을 연결하는 통로다. 종이를 접고 구멍을 뚫어서 서로 닿은 두 면의 구멍을 통과하면 종이 위를 한참 기어서 다른 쪽에 도달하는 것보다 빠를 것이란 논리다. 벌레 통로란 의미도 과일 중간을 파먹으면 반대편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한때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로 불렸다는 이것에 웜홀이란 이름이 붙은 건 존 휠러와 찰스 미스너 덕으로 알려져 있다.
혁신이란 뭘까. 누군가는 개발 시간을 줄이거나 비용을 줄이거나 둘 다 가능하다면 이것 아닌가라고 간단히 정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모든 기업이 넘지 못한 한계를 넘는 혁신은 가히 웜홀에 비유할 법하다. 과연 가능할까.
기업에 예측이란 경쟁을 이길 수 있는 통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원할 때 최저가격으로 문 앞에 배달한다면 성공의 7할은 담보한 셈이다.
어느 주거용 태양광 패널 서비스 기업을 따라가 보자. 이들의 고객 제안서는 조금 특별하다. “당신 이웃이 태양광 패널로 에너지 비용을 얼마나 절약했는지 아세요”라는 메일로부터 시작한다. 이걸 클릭하면 집의 지붕 각도, 근처 나무 위치, 지붕에 패널을 몇 개 설치할 수 있고, 그럼 얼마가 절약되는지 보여 준다.
그리고 한 번 더 마우스를 클릭하면 영업 담장자로 연결된다. 이 순간 영업 담당자의 화면은 고객과 같은 내용을 보고 있다. 질문과 답변, 견적, 설치 과정, 거기다 근처 기존 고객의 평가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계약이 성립하면 매달 사용 리포트를 받게 되고, 에너지 절약 정보도 날아온다.
물론 어떤 혁신도 마찬가지지만 새 방식이 자리 잡는데 실패도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떤 기술은 비즈니스에 웜홀을 만들 거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내 제안을 설명하고, 내 고객으로 만들고, 다시 지속된 고객으로 만들어 가는 지루하고 험난한 여정을 한참 줄여 줄 거라고 말한다.
사실 예전 같으면 고객이 했어야 할 많은 일을 이젠 기업이 먼저 제안하고 있다. 예전엔 이 가게 저 상점을 다니면서 발품을 팔았고, 근래엔 이 웹사이트 저 포털을 방황하며 '디지털-품'을 파는 대신 바로 “이것 어때요”라고 제안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것도 내가 단지 앱에 내 얼굴을 기억해 두는 것으로. 그리고 어느 날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내일 화장은 이런 식 어때요”라며 말을 걸어온다면 말이다.
혁신하는데 시간과 비용은 서로 밀치는 관계다. 시간을 조금만 단축하자고 해도 투자는 훨씬 많이 늘여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간을 끌 수도 없다. 시장은 언제라도 열기가 식고, 아예 문이 닫힐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둘 중 하나를 고정해 둔 채 다른 하나를 높이는 것, 그것도 생산성의 한계점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분명 웜홀을 찾아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소비자는 긴 여정에 나선 이들이다. 하지만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매 순간 매 순간이 즐거운 건 아니다. 패키지 여행 중 어딘지도 모르고, 이름도 생경한 상점에 몰이를 당해서 몇 시간이고 꼼짝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현지 쇼핑의 시간을 줄여 준다면 고객은 좋아하지 않을까.
당신이 그렇게 못한다면 “다음에 또 와 주세요”란 말은 “돈 써 줘서 좋았어요. 다음에 다시는 안 올 거 알아요. 굿바이”와 뭐가 다르겠는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