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업데이트가 멈췄다. 앱마켓을 장악한 구글이 앱 심사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정책에 맞서 이용자들에게 더 저렴한 웹 결제 방법을 안내해 왔다. 구글이 이용자를 인질로 잡고 카카오에 보복한 것이다. 현행법마저 무시한 구글의 횡포가 마침내 국민 메신저를 덮친 게 '카톡 사태'다.
1분기 기준 카카오톡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4743만명이다. 사실상 전 국민이 사용하는 앱이다. 구글은 2020년부터 인앱결제 강제, 수수료율의 일방적 인상을 강행하며 전 세계 개발자와 창작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제는 이 갑질이 우리 국민의 일상마저 위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 일상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클까. 구글은 갖은 갑질로 “Don't be Evil”(악해지지 말자)과는 결별한 지 오래니 논외로 하자. 국회는 2020년 구글의 발표 직후부터 입법 논의에 착수해 작년 8월 구글갑질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을 통과시켰다. 앱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방식을 강제하고 부당하게 앱 심사를 지연시키거나 앱을 삭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한편 방송통신위원회에 규제 권한을 줬다.
결국 가장 큰 책임은 규제 '권한'과 국민 보호 '의무'를 진 방통위에 있다. 구글은 구글갑질방지법이 통과된 후에도 인앱결제 강제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노골화했다. 그 사이 콘텐츠 사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요금을 올렸다. 졸지에 수수료를 더 내게 생겼는데 횡포를 막아줘야 할 방통위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그제야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실태 점검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런 복지부동, 수수방관, 늑장 대처는 구글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된다'는 신호나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법이 무시당하고 이용자가 피해를 보게 생겼는데도 당국은 천하태평이었으니 카톡 사태는 예고된 파국이다.
카톡 사태 이후의 대처도 문제다. 방통위는 사태가 터지자 장본인인 구글을 불렀다. 그런데 카카오도 함께 불렀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자리에 불러서 합의를 종용한 것이다.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까지 한 방통위가 상식적인 규제기관이라면 구글을 따로 불러 “법 위반이니 그만두라”고 경고해야 옳았다.
방통위는 적극적인 규제권 행사를 촉구받을 때마다 '피해가 발생하면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소를 잃어야 외양간을 고치겠다는 한가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톡 사태 이후에도 복지부동, '강 건너 불구경'이다. 이제 가만히 보니 소를 잃어도 외양간을 고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방통위는 '실태 점검 중'이라는 말도 반복한다. 카톡 사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현장은 숨이 깔딱 넘어가게 생겼는데 탁상머리를 지키겠다는 고집이다. 방통위가 점검기관, 조사기관인가. 방통위설치법 제3조 제1항은 '규제'와 '이용자 보호'를 방통위 설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방통위는 엄연한 규제기관이다.
혹시라도 법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댄다면 더 큰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구글갑질 방지법을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길목마다 방통위와 만나 의견을 듣고 협의했다. 사실상 입법 과정에 참여해놓고 이제 와 '법이 미흡해서'와 같은 핑계를 댄다면 이는 자가당착이다. 무능한 목수의 연장 탓일 뿐이다.
백번 양보해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할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법률과 제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통위 몫인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업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는지도 다시 살펴볼 일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도 방통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규제 현장에서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입법자들과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방통위는 실태 점검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태도다. 그마저도 신속, 투명과는 거리가 멀다. 현 상황을 점검해 보자고 토론회를 열어도 참석을 거부한다.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국회와 논의하고, 실무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인사 조치를 해야 한다. 이 가운데 방통위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윤석열 정권도 정신 차려야 한다. 한상혁 위원장 한 명 쫓아내려고 방통위를 식물조직으로 만들려는 음험한 속내를 모르지 않는다. 방통위 현안이 차고 넘치는데 대통령은 위원장을 두고 “필요 없는 사람”이라며 국무회의 참석조차 거절했다. 공개 발언이 이럴진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일들을 벌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 사이 빅테크의 횡포에 시달리는 개발자와 창작자, 일상을 위협받는 국민의 속만 탄다. 한국은 구글갑질 방지법을 통과시킨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 게임 개발자 팀 스위니로부터 “나는 한국인!”이라는 환호를 받는 빅테크 규제 선도국이었다. 정권 하나 바뀌었다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 민심이 고울 리 없다. 윤석열 정권은 “지지율은 의미 없다”는 오만을 멈추고 민심을 두려워하기 바란다.
얼마 전 국회 문화콘텐츠포럼 대표 자격으로 영국 의회 의원들을 만났다. ICT-콘텐츠 융합의 중요성 얘기는 자연스레 '빅테크 규제'로 옮겨 갔다. 이들은 가장 먼저 빅테크 규제법을 만든 한국의 노력을 중심으로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K-콘텐츠의 주역인 개발자와 창작자, 세계 시민들이 방통위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방통위는 응답하라.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yuseong0413@daum.net
◇조승래 의원은…
노무현 참여정부 행정관·비서관 출신, 더불어민주당 재선 국회의원이다. 초선 때부터 정책 역량과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교육위 간사를 맡았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과방위 간사로 활동했다. 민주당 원내 선임 부대표와 제4정책 조정위원장을 지냈다. 과학기술·ICT·게임·문화콘텐츠 같은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 인재 양성에 관심이 많다. 2020년 국회 문화콘텐츠 포럼을 만들어서 모임을 꾸려 가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구글갑질방지법 입법을 주도하며 '빅테크 저승사자'라는 별칭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