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 머신러닝의 하위 집합이다. 학습 가능한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이것은 인간 뇌의 구조와 기능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즉 인간의 사고 과정을 닮은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서 나름의 답을 찾아간다.
그 결과 인간이 인지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찾아내기도 하고, 위협을 감지하고 예측하기도 하며, 재조합된 정보를 인간의 언어로 반응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질문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로 향한다. 인간은 진정 어떻게 사유하는 존재였을까.
혁신의 저간엔 무엇이 있을까. 언젠가 이마저 내줘야 할지 모르지만 아직 인간의 몫인 것 가운데 혁신의 근저에 있을 인간의 독창성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직관을 그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제록스의 팰로앨토연구소(PARC)는 최고였다. 최고 기술을 갖추고 비즈니스에는 서툴렀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건 온전히 사실은 아니다.
물론 제록스는 성공의 정점에 찾아온 중소형 복사기 시장의 잠재력을 간과했다. 한번 놓친 기회를 캐논 같은 일본 기업들이 잠식해 온다. 품질 비교는 고가에다 고성능의 제록스에 화살이 향하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고객의 불만은 늘어 갔지만 어느 부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사실 고장 대부분은 자가 정비로 해결 가능한 정도였다. 그러니 제조 부서는 사용자 실수라고 보았다. 하지만 직관은 뭔가 근본부터 손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논쟁이 한참을 쳇바퀴 돌다가 결국 테스트를 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결과는 기술적으로 문제없음이었다. 성능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설명서만 잘 본다면 잘못될 게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자 연구소의 인류학자들이 테스트를 재설계해 보기로 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신형 복사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연구소 안에 가져다 둔다. 녹화 결과는 놀라웠다.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이곳 저곳을 만져 보다가 이내 화를 내고 자리를 떴다. 다음 사용자가 와서 이걸 보고는 바로 고장신고를 했다. 실제 복사기는 오류번호를 화면에 띄웠지만 정작 사용설명서를 뒤져보는 건 누구도 내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결론은 고장이 나지 않도록 하는 대신 고장을 전제로 하는 설계와 함께 생각을 바꾸는 데 있었다. 제록스는 화면을 통해 어디에 문제가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호작용할 수 있게 재설계한다. 그리고 예전에 개발해 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새 설계의 근간이 된다.
라디칼(radical)이란 단어는 뭔가 상식을 거부하는 다름이란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의 어원은 '뿌리까지'란 의미다. 그리고 이것은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뿌리의 질문에 해답은 찾는 것이란 설립 목적과 딱 맞는 것이었다. 비록 제록스가 이 발견을 모두 회수하지는 못했지만 8할의 여정은 완성한 셈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그럴 듯한 이야깃거리도 남겨 두었다. 팰로앨토가 기술 지식이나 지적 능력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한 가지는 '잘 연마된 직관'이라고 전해진다.
미래에 기계는 이것마저 학습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우리 몫인 듯 보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