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사망했다.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거리 연설에 나섰다가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을 거뒀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외신도 일본 정계의 거물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앞다퉈 타전했다. 특히 곧 치러질 참의원(상원)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일본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그의 죽음에 보수층이 결집하는 것은 물론 중도파의 '동정표'까지 흡수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아베 전 총리가 막후에서 이끌던 자민당은 사건 사흘 후 치러진 선거에서 과반을 확보하며 압승했다.
아베 전 총리는 생전에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제9조'의 개정을 평생 숙원으로 꼽았다. 특히 '군 보유'와 '국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제9조 2항에 초점을 맞췄다. 해당 항에 자위대를 명기,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전환시키는 게 핵심이다.
자민당을 포함한 개헌파는 이번 참의원 선거 승리로 헌법 개정안 발의 정족수가 가능한 전체 의석 가운데 3분의 2를 확보했다. 아베 전 총리는 사망하기 전에 이번 선거에서 안정적 지지 기반을 확보해 개헌을 논의하자고 강조했다. 자민당 총재직을 겸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선거 당일 “(개헌안을) 가능한 한 빨리 발의해서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자민당은 현재 자국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한편 '방어를 위한 군사작전 권한'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개헌안이 현실화하면 일본과 정치, 경제, 외교 등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일본이 자위대를 앞세워서 독도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거나 북한 도발 등에 대해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다. 중국 등 일부 외신은 일본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하는 등 군사 강국의 노선을 걸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한·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이은 기시다 총리는 지지율 등을 고려해 한국에 강경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에는 오는 2025년까지 이렇다 할 대형 선거가 없다. '황금의 3년'을 확보한 기시다 정권이 개헌에 드라이브를 걸 공산이 크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은 환영한다. 그러나 일본이 개헌을 통해 '재무장'의 길을 택한다면 한국도 그에 따르는 대비를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세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파악해서 한국에 가장 유리한 외교 정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급변하는 국제 정치에서 영원한 것은 오직 '국익'뿐이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