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원천기술이 확보돼야 합니다. 그래야 제조, 후공정 등 전체 산업도 가치가 있는데 현재 상황은 아쉽죠.” 취재 도중에 만난 팹리스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기업 중심의 국내 반도체 산업 구조에 중소 팹리스는 인력 확보는커녕 유출도 막기 어렵다며 설명을 보탰다. 사람이 없어서 사업이 어렵다는 표정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MZ세대인 기자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S로 시작하는 반도체 대기업에 입사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마다할 수 있을까?” 이번엔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지난주 정부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을 발표했다. 전략에는 학부 정원 확대와 반도체특성화대학·대학원 집중 지원 등을 통해 2031년까지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양성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인력 양성책 실효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불행하게도 현업에 뛰어들 젊은 세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평소에는 자주 언급되는 MZ세대가 반도체 정책에는 배제된 것이다.
초강대국 달성전략이 왜 반도체인지, 하필이면 시스템반도체인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었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과 팹리스 등의 경쟁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자료에서 소부장·팹리스의 인력 유출 문제를 진단하며 '학생이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SW) 기업 취직을 선호해서 고급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소자 대기업 사례를 언급했다. '고임금'과 '워라밸'(일과 생활 균형)로 대표되는 IT업계 전반이 반도체 산업의 경쟁자인 셈이다.
반도체학과 증설과 반도체 아카데미를 만들면 필요 인력이 단기간에 충원될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더욱이 정부가 중점으로 삼은 시스템반도체 전문인력은 단기 교육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실 인식부터 시급하다. 여전히 젊은 세대는 반도체 하면 하얀 방진복을 쓰고 클린룸을 오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정부 전략에는 1020세대는 반도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학과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에 대한 선행조사가 없다. 대학 입학 당시 선택한 전공이 직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칩 설계'라는 영역이 있고 '원천기술 확보'가 얼마나 유망한 산업인지를 알려야 한다. 젊은 세대가 마음 놓고 팹리스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정부 전략을 살펴보면 반도체 산업 종사자를 위한 유인책에는 '내국인 우수인력의 국내 기업·연구소 취직 시 소득세 50% 감면'밖에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적극적인 팹리스 종사자 지원책이 필요하다. 팹리스 업계의 '네카쿠라배'(네이버·카카오·쿠팡·라인·배달의민족)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반도체 인재의 대기업 쏠림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리스턴대 교수의 고등학교 자퇴 이력이 화제였다. 허 교수는 자퇴 기간에 수학에 대한 관심도와 실력을 끌어올렸다. 교육과정 확충만으로 '반도체의 허준이'를 만들 수 있을까?
송윤섭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