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MBTI와 외향 사회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MBTI와 외향 사회

MBTI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사실 정신의학적 용도로는 MBTI가 많이 활용되지 않는다. 개인의 성격 분석을 위해 정신의학자나 심리학자라면 MMPI를 훨씬 선호한다. MBTI는 테스트 때마다 달라져서 진단 붙이기를 좋아하는 의료계에서는 신뢰하기가 어렵다. 한동안 유행하던 '혈액형 성격 분석'은 MBTI로 대체됐다. 경쟁적인 한국 사회는 상대방 파악 능력을 요구했고, 독립심 강한 MZ 세대는 이전 혈액형 세대와의 차별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미신 유행이라는 비평도 있지만 중요한 건 정확한 '심리검사'보다 삶의 풍요로움이다. 전 세계에서 아무도 믿지 않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만 통용된다던 혈액형 성격 분석에 비하면 더 풍부하고 과학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카드를 던져 보는 타로보다는 MZ 세대에 더 잘 어울린다.

MBTI는 카를 융의 '인간심성론'을 따라 개발됐다. 융은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무의식 세계를 개척했다. 르네상스에 이어 산업혁명과 계몽주의가 꽃필 때 합리성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인간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했다. 융은 프로이트의 결정론적 관점에 거부감을 보였고 동양사상에도 우호적이어서 현대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신학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MBTI는 '성격진단용 심리검사'가 아니다. 성격을 몇 개 유형으로 나누어 인간 심성의 다양한 발달과 '분리개별화'를 통한 '자아실현'의 다음 단계로 당신을 안내한다. MBTI 성격 유형은 다소 모호하지만 성장과 변화 가능성을 제안한다. 삶의 다양성과 상호작용을 통한 삶의 여정에 대한 사색을 촉진하는 도구다. 물려받은 혈액형은 변하지 않고, 타로는 점쟁이 맘대로인 것과 다르다. 필자는 정신과 전공의 시절에 융의 제자인 이부영 교수께 분석심리학을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내 MMPI는 25년 동안 변함이 없지만 MBTI는 계속 변했다. MZ 세대 인간심성론은 심심풀이가 아니다.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초연결 시대는 자신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삶의 활력을 회복하라고 재촉한다.

검사 결과가 무슨 유형인지는 그저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내향형(I)이어서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외향형(E)은 적극적, 판단형(J)은 매사에 계획적이라는 식의 설명은 너무 단편적이다. 융의 '내향'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외적(객관적) 판단 기준보다 내적(주관적)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한다는 뜻에 가깝고, '외향'과 '내향'의 조화 및 균형을 추구하는 힘의 주된 근원점에 가깝다. 사색가 융 자신도 내향형이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외향형이라면 융의 분석심리학은 내향형에 가깝다.

사고력(T)뿐만 아니라 감정적 판단(F)도 합리적인 성향이다. 직관(N)과 감각(S)은 판단에 앞선 '인식'이다. 성격 유형은 현재의 스냅샷일 뿐이고, 성숙한 '자아실현'으로 가는 삶의 여정에서 안내자다. 숙명적인 혈액형이나 운수에 떠맡기는 타로보다 멋지지 않은가.

MZ 세대는 이전의 '혈액형 세대'와 확실한 차별화를 꾀하는 듯하다. MZ 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불확실성은 다음 세상을 어디로 인도할까. 콤플렉스와 페르소나 외에도 융은 매우 진일보한 개념들을 제시했다. 융은 '집단적 무의식'이 실재한다고 보았다.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은 오늘날 세계를 불안하게 조성하는 '전쟁' '신냉전' '경제위기' 또는 '인공지능'과 '화성 이주' 같은 환상을 예견하며, 융의 가장 신비주의적 제안이던 '동시성 이론'으로 안내한다. 융의 가장 큰 업적은 '원형'과 '상징'에 대한 탐구였다. MBTI 여덟 문자에서 출발해 자신의 콤플렉스와 페르소나를 돌아보고 세상과 내면의 두 목소리에 의지해서 자아실현 여행을 떠나 보자.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다음 세상의 운명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