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미래지향적 플랫폼 규제로 전환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플랫폼 자율규제 논의가 뜨겁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적 관심사인 부동산 정책만큼이나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초대형 플랫폼의 불공정성을 바로잡고 중소 플랫폼이용사업자나 국민 이용자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내외 여론을 바탕으로 여러 규제 논의가 뜨거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자율규제만이 바람직한 방향인 것처럼 정부 관심사는 온통 기업의 자유와 산업 발전에만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인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만큼 경제 발전과 국민 생활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방임이나 맹목적 무규제로 더 강력한 규제 반작용이 생겨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아무런 규제 없이도 플랫폼 이해관계자가 자유 의지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이상적인 모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익 침해나 이해관계 충돌, 불공정의 그늘이 생겨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플랫폼 혁신을 통한 국민 편익 증진과 경제 발전이라는 긍정적 영향력은 최대한 촉진해야 한다. 반면에 다양한 역기능은 찾아서 최소화해야 한다. 문제는 플랫폼이 매우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의 복합체라는 점이다. 온·오프라인 융합이나 메타버스 발전이 가속화돼 플랫폼이 우리 사회·경제 그 자체가 되는 세상이 다가오면 플랫폼 규제 필요성과 정도는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자율규제 개념, 범위, 유형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하나의 규제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플랫폼이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는 이미 법적 규제가 마련됐거나 진행 중이고, 플랫폼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새로운 규제 목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플랫폼 규제에 대한 다각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플랫폼 이슈에 대해 자율성이 낮은 규제부터 높은 규제까지 어느 수준의 수단을 활용할 것인지, 개별 이슈별로 상이한 규제수단을 활용할 것인지 플랫폼 이슈를 종합해 하나의 규제틀 속에 넣을 것인지 등을 선택해야 한다.

새 정부 전환 시기를 미래지향적 규제 패러다임 전환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플랫폼 특성, 우리나라 특수성 즉, 세계 최고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국민의 뛰어난 수용성,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에 대항해 선전하는 토종 플랫폼 보유, 공공·대기업 중심 산업 발전 경험, 한국 사회 문화·역사나 국민의식과 글로벌 환경을 종합 고려한 한국형 규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과연 어떠한 규제모델이 우리나라에 적합할까.

일반적으로 규제모델은 강제성이나 타율성이 매우 강한 경우부터 자율성이나 자발성이 매우 높은 경우까지 다양한 수준을 상정할 수 있고, 규제가 필요한 정도에 따라 적합한 모델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그 수준을 결정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필자는 오래전부터 플랫폼 환경에 맞는 가장 바람직한 규제 모델로서 민관의 '협력적 공동규제'를 주창해왔다. 1차 집행이나 실행을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거나 집행하기 위한 기준을 만드는데 협력함으로써 2차적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의 협력적 공동규제 모델이 우리나라 플랫폼 환경에 가장 적합하다. 이러한 규제모델은 아직 법적 규제가 정비되지 않은 플랫폼 문제 대응뿐만 아니라 법의 자율준수를 유도할 때도 적용할 수 있다.

한국형 플랫폼 규제 모델
한국형 플랫폼 규제 모델

새 정부 기조가 자율규제에 있는 만큼 진정한 자율규제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자율규제는 민간과 국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선 정부나 국회의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플랫폼이 스스로 책임성을 가지고 진정한 자율을 시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자율규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성급한 규제 시도나 정부 개입은 자율규제 의지를 꺾는 지름길이다. 반면에 시의적절하고 합리적·실효적인 규제 설정의 자세와 적절한 인센티브는 민간의 자율규제를 촉진한다.

플랫폼은 자율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국민과 국가에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해관계자 참여를 보장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플랫폼 운영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지속적 실천이 있어야 한다. 흔히 미국에서 자율규제가 잘 되는 이유는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얼핏 들어보면 맞는 얘기 같지만, 미국 기업은 신산업 신서비스가 나왔을 때 누구보다 자발적으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사회에 신뢰를 부여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정부와 의회가 아직은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규제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선순환적 자율규제 환경이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은 강력한 사법체계도 한몫하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기업과 국가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만 자율규제 환경이 뿌리내릴 수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율규제든 협력적 공동규제든 만일 법적 규제나 강제 규제가 있었다면 기대할 규제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완벽한 규제 목적 달성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자율규제나 협력적 공동규제의 진정한 효용은 강제적 법적 규제로 나아가는 임계점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나 국회도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자율규제가 꽃 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플랫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율성과 책임성에 기반해 플랫폼에 최적화된 자율규제 모델을 찾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민관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협력적 공동규제와 자율규제가 적절히 조화되는 한국형 플랫폼 규제모델을 통해 지속적 플랫폼 혁신을 이루고 국민이나 중소 플랫폼이용사업자 모두가 혜택을 누리며 상생발전할 수 있는 규제 패러다임 대전환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kjchoi@gachon.ac.kr

○최경진 교수는

가천대 법학과 교수이자 인공지능(AI)·빅데이터 정책연구센터장이다. 우리나라 전자상거래·데이터 법 전문 연구자이자 ICT·미디어 분야에서도 연구 업적을 쌓은 법·정책 대표 전문가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 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 한국정보법학회·한국인공지능법학회 부회장,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정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