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삼성전자는 경쟁사인 대만 TSMC보다 6개월 먼저 3나노미터(㎚) 반도체를 출하했다. 기존 첨단 반도체에 비해 소비전력을 45%나 줄이고 계산 성능을 23% 높일 수 있게 설계됐다고 한다. 앞으로 수율을 높이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차세대 반도체 집적기술을 적용한 첫 양산이어서 'K-반도체' 산업은 세계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반도체는 설계에서 생산(파운드리)까지 많은 과정이 국제적으로 분업화된 대표적 산업이다. 삼성전자는 생산공정 부문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국제분업 체계에서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생산이 가능하지 않다.
미-중 간 패권경쟁 중심에는 반도체가 자리 잡고 있다. 군사 안보와 4차 산업혁명 등에서 고성능 첨단 반도체는 필수 품목이다. 미국 의회 싱크탱크(CRS)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 국가(한국 28%, 대만 22%, 일본 16%, 중국 12%)가 세계 반도체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는 중국 기술력이 미국에 한참 뒤지는 대표 분야다. 대규모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자하고 생산 역량이 축적되면 중국도 미국 반도체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 분업체계 밖에선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반도체 기술 굴기와 2025년 자급률 70% 목표 달성을 위해 중국은 엄청난 규모의 연구비를 쏟아부었지만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6.1%에 불과하다. 생산량의 93%는 외국계 기업이 현지 생산했다.
미국은 10㎚ 이하 반도체 생산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지 않도록 각종 수출제한 조치를 하면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공정설비를 구축하고 대규모 연구비를 지원, 중국과의 초격차 유지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산업에 무려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반도체 육성법안(CHIPS+법)을 제안했다. 인텔, 삼성전자, TSMC 등 미국 정책에 화답한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법안 제정 지연에 애가 탄 바이든 대통령이 영상회의를 통해 “반도체 육성법안은 국가 안보를 위해 절실하다” “반도체를 발명한 미국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과 기술 우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조속한 법안 통과를 호소하자 의회도 적극 움직였다.
지난 7월 말 의회 상원과 하원이 반도체 육성법안을 전격 통과시키고, 이달 9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속전속결로 서명했다.
반도체 기업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반기면서도 반도체 육성법안에 포함된 중국 투자 제한 조항을 마뜩잖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 내 반도체 설비를 운영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의 입지는 앞으로 더 좁아질 것이다.
대만 TSMC는 선제로 탈중국을 결정하고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TSMC는 120억달러를 투자, 5㎚ 반도체 공장을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서 투자비 절반인 4조6000억원을 지원받아 일본 구마모토현에 차량과 가전용 반도체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대만과는 생산 협력, 미국과는 기술개발 협력에 집중한다. 지난 7월 말 미국 워싱턴DC에서 미·일은 경제·외교 장관회의체인 '경제정책협의회'를 열어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추진에 대응하는 인프라 투자 기준과 반도체 공급망 강화,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탄압 등에 대해 협의하기로 했다.
지난 3월 미국은 일본·한국·대만에 '반도체 동맹'(칩4) 결성을 제안했다. 일본과 대만은 이미 미국 요청을 수용했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 우리나라는 아직 결정을 보류하고 있다. 삼성전자 3㎚ 반도체는 미국의 설계기술·소프트웨어·장비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미국 지식재산권(IP) 없이는 신제품을 개발할 수도 없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지속 발전을 위해 칩4 동맹에 참여해야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inkyo@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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