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부터 규제 풀자] (6) '핀'테크 말고, 핀'테크'로 접근

[신산업부터 규제 풀자] (6) '핀'테크 말고, 핀'테크'로 접근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여의도와 런던의 핀테크 산업 규모 비교

'전통 금융 강국'은 '디지털 금융강국', 즉 핀테크(FinTech) 강국이 될 수 있을까? 반대로 금융 약소국도 핀테크 강국이 될 수 있을까? 하나금융그룹이 동남아시아 MZ세대를 겨냥해 네이버 자회사 라인과 협업한 '라인뱅크'는 은행계좌는 없지만 인터넷 이용인구가 높은 동남아시아 특성을 활용해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까지 디지털 뱅킹 플랫폼을 확장한 사례다. 과거에는 금융기관이 금융산업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시공간을 넘어 더 쉽고 간편하게 금융거래를 하는 신기술로 무장한 핀테크가 산업의 지평을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핀테크 시대, 우리의 글로벌 경쟁력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 어디까지 왔나

여의도에 금융허브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등장한 것은 2004년께로 기억된다. 당시 필자는 국회에서 금융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동북아 금융허브'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글로벌 컨설팅사가 금융 혁신 플랜을 설파하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속절없는 일장춘몽(一場春夢)에 그치고 말았지만, 당시에도 비현실적이라는 비판과 분석이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우리나라가 동북아를 포괄하는 금융허브가 될 수 있냐는 근본 질문이었다. 심지어 여의도가 동북아의 금융허브는 커녕 서울의 금융허브로도 기능하기 어려운 마당에 무슨 허장성세(虛張聲勢)냐는 반론도 있었다. 시중 은행의 본사 대부분은 도심, 즉 광화문과 종로, 을지로 일대에 위치하고, 여의도에는 주로 증권사가 밀집해 있는 정도였다. 2004년 이후 금융허브의 꿈은 흐지부지됐다. 명칭도 '금융중심지'로 변경되고 2009년 정부가 부산을 추가 지정하면서 '금융허브'의 명칭도 자연히 소멸했다.

20년이 지난 2022년 여의도 금융산업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동북아 금융 중심지의 꿈은 어디까지 왔을까? 2022년 3월 기준 국제금융센터지수(Global Financial Centres Index)에서 서울은 16위로 머물렀다. 동북아시아 경쟁 도시인 상하이(3위), 홍콩(4위), 베이징(6위), 도쿄(7위), 선전(8위)보다 뒤처진 양상이다.

서울시 핀테크 육성에는 상상력 필요

시간이 흘러 기존 금융회사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통과하며 핀테크 시장이라는 큰 변곡점을 맞이했다. 오늘도 누군가는 OO페이로 점심식사 비용을 결제하고, 동료와 후식으로 마신 커피값을 N분의 1로 나눠 모바일 메신저로 송금한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핀테크 서비스 사용자다. 핀테크는 전통 금융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모바일 결제, 송금, 자산관리 서비스 모두를 통칭한다. 캐시리스(cashless)가 우리의 삶에 속속들이 스며들고 있는 국내 현황 못지 않게 글로벌 핀테크 시장도 2014년 1조6000억달러에서 2020년 약 5조달러 규모로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아시아 금융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여의도를 금융특구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보였다. 기본계획 안에는 디지털 금융 산업 생태계를 위한 제2 핀테크랩 조성, 디지털금융지원센터 건립, 디지털금융 전문인력 양성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 지원의 핀테크랩이 단순히 공유 오피스 임차료를 내주는 수준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보다 스마트한 전략이 필요하다. 인구 1000만명이라는 확실한 실증 인프라와 대부분 금융기관 본사를 가진 서울의 자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설익은 산업 이해가 낳는 불편한 규제

핀테크가 금융 산업인지, IT산업인지 논쟁은 지속돼 왔다. 여전히 핀테크와 관련된 제도는 모두 기존 금융 법률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핀테크에 특화된 특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금융중심지 육성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공정거래법,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핀테크 산업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에 더해 핀테크 산업 성장의 결정적 장애물로 간주 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전자금융거래법, 전자금융감독 규정과 망분리 규제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핀테크 산업 종사자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신산업부터 규제 풀자] (6) '핀'테크 말고, 핀'테크'로 접근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규정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2021년 12월 30일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금융상품 판매업자 외에는 금융상품의 영업행위를 금지(제11조)하도록 규정한다. 또 핀테크 업체가 소비자에 금융상품을 소개하는 행위를 '광고'가 아닌 '중개'로 판단, 이를 규제 대상으로 간주해 핀테크 기업의 시장 확장에 제동이 걸려 있다. 전자금융거래법에 적용되는 망분리 규제도 지금껏 금융기업이 외부 ICT 회사와 협업해 금융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큰 걸림돌이 돼왔다. 일례로 개발소스를 외부로 반출할 수 없어 한정적 오픈소스로만 개발해야 하니 시간적, 금전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빅테크 기업 견제는 자꾸만 커진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동일 기능, 동일 규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대형 정보통신기업인 빅테크 기업은 간편결제라는 결제대행뿐 아니라 주문관리, 회원관리, 정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적립금이나 프로모션도 카드사에 비해 훨씬 다양하므로 별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터져 나온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카카오페이, 페이코 등의 성장세가 무섭고 향후 기존 금융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커질 수 있다.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이 증가할수록 빅테크 금융 상품 관련 리스크, 네트워크 효과에 따른 데이터 독과점에 의한 금융 소비자 피해 가능성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규제 논의가 계속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빅테크 기업이 이를 돌파하려면 종합지급결제업(금융관련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사실상 '금융업자'로 변신하는 법)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는 자본금 200억원 이상을 요건으로 하기에 금전적 부담이 크다. 역으로 일반 시중 금융지주회사가 도입하기에는 전자금융에 대한 제한들이 발목을 잡고 있으니 기술은 있으나 자본력이 부족하고, 자본력은 있으나 기술은 부족한 이도 저도 못 하는 요령부득(要領不得)의 형국이다.

소형 핀테크 업체도 고민은 크다. 핀테크는 결국 돈을 가지고 움직이는 산업이고, 사업 확장성을 위해서는 스케일업을 해야 하는 것이 1차 관문이지만 그 문턱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금융산업으로 분류되는 순간 인프라, 시스템, 보안 등 2차 금융규제의 엄격한 허들이 생겨나는 통에 작은 스타트업 역시 속절없이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토스가 국내 핀테크 유니콘 스타트업으로 살아남은 것도 참 흔치 않은 사례라 하겠다.

해외 사례에서 보는 핀테크 지원책

빅테크 금융업 진출로 인한 리스크와 경쟁 과열 (자료:삼정 KPMG 경제연구소, 2021)
빅테크 금융업 진출로 인한 리스크와 경쟁 과열 (자료:삼정 KPMG 경제연구소, 2021)

그렇다면 서울 핀테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어떠한가. 글로벌 시장에서 서울의 위치는 그리 높지 않다. 핀테크 기업 수를 비교하면 서울은 85개로, 런던 3018개, 홍콩 600개 대비 현저히 낮다. 투자 금액 역시 2021년 기준 1199억원으로 런던 28조3500억원과 비교하면 무척 적은 수준이다. 고용 규모는 또 어떠한가. 서울의 핀테크 분야 종사자는 843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런던 7만6500명과 비교하면 역시 차이가 난다.

영국은 어떻게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했을까. 영국은 정부 차원의 투자가 이뤄짐과 동시에 핀테크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과 벤처캐피털(VC) 투자가 활발하다. 2021년 상반기만 283건으로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경제 전환 차원에서 영국 은행의 약 60%가 핀테크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런던의 경우 런던 테크시티를 중심으로 핀테크 산업과 종사자가 밀집해 있다. 영국 정부는 컨트롤타워 및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뿐 개발과 투자는 금융권이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수도권에 각종 규제를 가하는 우리나라 정책과는 사뭇 대비된다.

한국은 빅테크 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기존 금융기업 견제가 본격화했으며, 정부도 금융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영국과 같은 선진적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정책 영역이라 판단된다.

머리는 바쁘게, 간섭은 게으르게

세계가 핀테크 유니콘 기업 육성에 두 팔을 걷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핀테크 산업 환경 여건이 너무 척박한 탓에 '예비유니콘' 기업 육성 경쟁에서도 뒤처질까 두렵다. 각종 금융 규제에 기존 금융기업과 신진 빅테크·핀테크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피로감은 점점 누적된다. 이제라도 정부는 수도권과 핀테크 산업에 둘러쳐진 각종 규제와 세금 울타리를 걷어내야 한다. 자유롭게 기업을 설립하고, 신속하게 사업을 인가하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산업 환경이 조성될 때 여의도는 동남아시아 금융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다.

미국 외교의 지평을 바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이런 말을 남겼다. “행동 범위가 가장 클 때, 행동의 기초 지식은 항상 최소한이었다. 반면에 지식이 가장 풍부할 때 행동 폭은 종종 사라졌다.” 정부는 이제 핀테크가 금융산업이라는 시각을 걷어내고, 기술 기반 혁신 관점에서 봐야 핀테크 성장 사이클을 단축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리는 바쁘더라도, 행동은 최소화해야 국내 핀테크 산업이 성장한다.

임성은 서울기술연구원장 ych5534@sit.re.kr



<필자> 임성은 원장은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출제·선정 위원, 서울특별시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국책연구원 평가위원를 거쳐 현재 서울기술연구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