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여행 도중 TV를 시청하면서 이른바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몸소 경험했다. 미국 지상파 채널을 표시하는 스테이션 표시에 NBC는 피콕, ABC는 훌루+, CBS는 파라마운트+를 옆에 함께 쓰는 것을 봤다. CBS는 한발 더 나아가 스테이션 ID와 'live+on demand+streaming'을 표시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 자사 콘텐츠를 스트리밍으로 동시에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공개적으로 알려준 것이다.
미디어 산업 변화는 과연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시시각각 변하는 미디어 산업 변화 양상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2분기 실적 발표에서 넷플릭스 가입자는 감소했지만 디즈니플러스(디즈니+)를 비롯한 다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증가했고,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여겨진 넷플릭스 가입자 전 세계 숫자는 디즈니+가 훌루+와 ESPN+를 합해 추월했다.
OTT 하면 시청자가 월정액을 내는 구독형 주문형비디오(SVoD) 형태로만 여겨지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광고 기반 서비스로의 이동이 본격 진행되고 있다. 사업자에 따라서는 저렴한 월정액과 함께 광고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형태 또는 광고를 시청함으로써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월정액 SVoD로만 OTT를 제공해 온 넷플릭스는 내년, 디즈니+는 올해 말부터 SVoD 서비스와 가격을 차별해서 광고 기반 서비스를 시청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을 제공하기로 했다. 나아가 얼마 전 워너브라더스와 합병한 디스커버리도 FAST(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플랫폼 제공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발표했다.
FAST 플랫폼의 약진은 놀랍기만 하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FAST 서비스가 콘텐츠와 가입자 측면에서 이제는 전통 TV 서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FAST 플랫폼을 시청하는 가구가 2021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하는 등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영역이라고 한다. 스마트TV를 소유한 10가구 가운데 6가구가 FAST 채널을 시청하고 있다. 무료이고, 로그인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유료방송처럼 채널가이드 제공과 쉽고 편하게 채널 전환이 가능하다. 시청자는 FAST 서비스를 통해 채널 시청 시에도 기존 유료방송과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대부분 FAST 채널은 모바일이나 TV 앱뿐만 아니라 삼성·LG전자 등 스마트TV나 애플TV, 아마존 파이어나 로쿠와 같은 OTT 셋톱박스 채널가이드·메뉴 등과 통합 운영되고 있다.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는 자사 '주모'(Xumo)를 기존 유료방송 Xfinity 서비스에 포함시키고 캐나다 쇼(Shaw)도 투비(Tubi)를 자사 셋톱박스에 탑재하는 식으로 FAST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 시청자는 스마트TV나 OTT박스 또는 기존 유료방송 사업자가 제공하는 채널가이드를 통해 채널에 접근, 시청하는 방송이 기존 유료방송인지 FAST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단지 시청자는 TV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뿐이다. 시청자에게 어떤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인지는 관심 밖이다.
기존 케이블TV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채널을 기존 방법대로 제공하기 때문에 미디어 전문가 사이에서는 FAST 플랫폼이 '뉴 케이블'(NEW CABLE)로 불리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말미암은 미디어 산업의 지형 변화는 미디어 산업 가치사슬 'C-P-N-D' 전반에 걸쳐 일고 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에게는 피부에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여태까지 모습과는 전혀 다르거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미국 1·2위 케이블 사업자인 컴캐스트와 Cox가 케이블 방송이 아닌 뉴 케이블이라고 불리는 FAST를 포함한 OTT박스 플렉스(Flex)를 자사 인터넷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얼마 전까지 상상이나 했을까. 기존 미디어 산업을 와해시키는 이러한 모습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고, 빅뱅처럼 지속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