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테슬라가 GM의 시총을 추월할 때 테슬라의 시장 공급량은 단지 연간 15만대 정도였다. 반면에 자동차업계의 전통적 강자인 GM의 생산량은 1000만대를 넘은 상태였다. 당시 이 사건은 다윗이 골리앗을 제쳤다고 표현할 정도로 큰 이슈였다. 투자자들은 일론 머스크의 비전을 사들이고 있다며 테슬라의 혁신 가치가 GM의 시장 가치보다 높음을 인정했다. 이에 15만대 판매량만으로도 GM을 제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사실 GM은 2016년 매출 1163억8000만달러, 순이익 94억27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반면에 테슬라는 매출 70억13만달러에 순손실이 6억7491만달러인 적자기업이었다. 시장점유율은 GM이 17.3%, 테슬라가 0.2%였다.
혹시나 테슬라가 상장 유지나 시가총액을 높이기 위해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느 정도 생산능력을 갖춘 기업들을 인수한다' '가솔린이나 디젤 차량 생산시장에 진입한다' '이를 통해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높인다' '1000만대를 팔기 위해 몸집을 불린다' 등 이런 식의 확장전략이었다면 곧 테슬라의 혁신을 멈추게 했을 것이다.
테슬라 사례는 유니콘을 지향하는 기업에 커다란 이정표이자 경종을 울린다. 단순히 혁신성을 갖춘 성공한 기업의 신격화가 아니다. 그 혁신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경영자의 철학이 묻어 있어야 하고, 이와 함께 어떤 외압에도 흔들림 없는 시장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반면에 테슬라의 사례를 보면서 최근 우려되는 유니콘 기업이 있다. 바로 상장은 앞둔 마켓컬리다. 현재도 시장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유망 기업이다. 다만 이 회사가 다윗의 혁신성을 버리고 골리앗이 되기 위한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새벽 배송을 통해 건강한 음식을 전해 주겠다는 혁신 포인트가 있던 마켓컬리는 현재 상장을 앞둔 시점에서 대기업의 세탁기까지 팔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스타트업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구도심 지역 임대료가 저렴한 상업 공간 중심으로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공방·갤러리 등이 들어서면서 입소문을 타고 유동 인구가 늘다 다시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가 입점하는 등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모했고, 결국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기존의 소규모 상인들이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됐다. 대표 사례로 서울 홍대 앞, 경리단길, 경복궁 근처 서촌, 성수동, 가로수길 등이 있다.
아쉽게도 스타트업이 혁신 가능성을 인정받아 시장 프런티어가 된 후 가장 큰 실수가 바로 시장 확장 유혹에 빠진 '스타트업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마켓컬리가 테슬라처럼 스타트업의 혁신성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매출 1000억원 정도로도 비전만을 통해 쿠팡의 시장 가치를 넘을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스타트업 젠트리피케이션'에 빠져드는 순간 이 회사는 쿠팡을 이기기 위해 매출 25조원 이상이 필요한 골리앗이 돼야 한다. 테슬라가 혁신 비전을 버리고 GM을 매출과 시장점유율로 이기겠다고 선언한 모습을 상상해 보라.
유니콘을 향해 발전하는 국내 스타트업에 '스타트업 젠트리피케이션'은 성장과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유혹이자 극복해야 할 산임은 틀림없다. 그 유혹을 이기는 힘은 바로 흔들림 없는 혁신 가치의 지속성과 고도화뿐이다. 매출 아닌 미래를 파는 것이 '스타트업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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