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킨. 어느 식당이나 매장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다. 이것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앞면엔 대개 매장 로고가 찍혀 있는데 한 쪽에 있기도 하지만 종종 가운데에 떡하니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여기에 뭐라고 메모하려면 뒷면을 쓰게 된다. 그리고 손바닥 넓이도 안 되는 이 흐느적거리는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비즈니스 아이디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담는 공간이 된다. 냅킨의 뒷면만큼 이것에 적합한 곳도 없어 보이는 건 왜일까 싶기도 하다.
당신은 무엇을 혁신이라고 하는가. 혁신의 정의를 묻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혁신을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굳이 전략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그냥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사실 이 질문은 많은 답을 깨우치게 한다. 크레스트(Crest)란 기업이 있다. 1954년께에 치약을 처음 내놓았다. 1960년대 들어서서는 선도 기업이 된다. 충치와 치석 방지 치약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스코프란 가글, 픽소덴트란 구강용 접착제, 크레스트 브랜드를 단 치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을 보낸다.
하지만 이 긴 황금기는 1997년에 끝을 맺는다. 시장 리더 자리를 콜게이트에 뺏긴다. 오럴케어 시장에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지만 크레스트는 이 해에 콜게이트가 미백 기능을 추가한 토탈(Total)이란 새 치약을 내놓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장 세그먼트는 몇년 만에 5억달러로 성장한다. 이 시장에서 토탈은 선두 제품으로 자리 잡았고, 크레스트의 매출은 꾸준히 감소한다.
사내에서조차 잃은 시간에 대한 탄식이 나온다. 누군가는 크레스트가 자신을 과거에 매몰시켰다고 평한다. 모기업 P&G의 새 최고경영자(CEO)이던 A. G. 래플리의 진단은 이점을 짚었다. “소비자가 집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구강관리로 브랜드 정의를 확장했어야만 했습니다.”
크레스트는 기존에 하던 좀 더 나은 제품이나 기존 제품을 단광고·홍보·포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 범주와 뭔가 이제까지 없었지만 고객이 원할 만한, 아니 어쩌면 소비자 자신조차 자기가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제품을 추구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제품이 화이트스트립이란 미백용 테이프였다. 그전 같으면 500달러짜리 치과 미백 처치를 받아야 할 것이 44달러에 소비자가 직접 할 수 있었다. 12개월 동안의 판매액이 2억달러에 이르게 된다. 치약에는 프라그, 치은염, 시린 증상을 완화하는 기능도 추가해 본다. 그리고 이 방식은 크레스트뿐만 아니라 P&G의 성공방식이 된다.
1967년 이미 소규모 항공사를 실패한 롤린 킹은 한 식당에 앉아서 40세의 뉴저지 출신 변호사 허버트 켈러허에게 냅킨에 삼각형 하나를 그려 보였다. 이건 훗날 가장 수익성 높은 항공사가 되었다. 동그라미 네 개와 이걸 연결한 네 줄은 요즘 월드 와이드 웹이라고 부르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 냅킨 위에 끼적인 것은 모두 세상을 바꾼 무언가의 마스터플랜이었다.
당신은 냅킨 뒷면, 그 작은 공간의 위력을 아는가. 당신이 그곳에 가 보았다면 분명 지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