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브(reverb). 익숙한 듯하지만 흔히 쓰는 용어는 아니다. 우리말로는 소리의 잔향 정도 의미다. 어느 사전은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리도록 음악적 효과를 낸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 메아리 효과로 해석하는 건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 대신 소리의 깊이나 충만함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싶다. 넓게 트인 야외에서와 연회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다르지 않은가. 그러니 어찌 보면 소리를 소리답게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혁신엔 오래된 논쟁거리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혁신은 난관 속에서 핀다는 것이다. 항상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이럴 때 더 두드러져 보이는 건 사실인 듯하다.
누군가는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설립된 게 우연치곤 너무 공교롭지 않으냐고 말한다. 한참 더 거슬러 가면 다른 사례도 나온다. 월트디즈니는 미국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종잡을 길 없던 1923년에 설립됐다. 맥도날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경제가 자신을 잃어 가던 때 지금 모습으로 재창업됐다.
에어비앤비는 저렴한 여행을 원한 새 밀레니엄 세대란 환경에서 탄생했다고 누군가 말한다. 우버의 자동차 공유도 마찬가지다. 대공황을 향해 질주하고 있던, 역사상 부가 가장 편중되던 사회에서 디즈니는 희망이란 테마를 찾아냈다고도 누군가 말한다.
어느 날 리처드와 모리스 두 형제는 샌버너디노에 있던 '맥도널드 페이머스 바비큐'라는 제법 그럴듯한 가게의 문을 닫는다. 영화에서 봄직한 웨이터가 차에 배달해 주는, 이른바 카홉(carhop) 방식 가게였다. 그러고 몇 개월 뒤 문을 연 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맥도날드였다.
이때 두 형제가 메뉴 40개를 버리고 선택한 것이 햄버거였다. 바뀐 건 간판의 바비큐를 햄버거로 바꾼 것만이 아니었다. 마치 자동차 공장이라도 된 듯한 조립식 조리 과정이었다. 가게 간판에 넣은 '봉지에 넣어 드립니다'란 제안은 요즘 흔한 테이크아웃 포장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때가 1948년. 경기는 침체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시기에 맥도널드 형제가 새 매장에서 자신들이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Speedee Service System)이라고 부른 조리 방식을 통해 고객들에게 돌려준 것은 비슷한 가게의 절반 수준인 15센트로 가격을 매긴 햄버거였다. 이듬해에는 프렌치 프라이즈와 코카콜라가 메뉴판에 등장했으니 어찌 보면 1948년의 혁신은 지금까지도 영존한 유산이 된 셈이었다.
잘 알려진 이론처럼 긴 성장 사이클이 끝나면 그만큼 침체는 피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많은 기업이 이 시기에 단지 생존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 다시 꽃피고 모든 게 풍요해질 때 혁신하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혁신은 풍요의 반대편에서 생기를 띤다.
정히 새 혁신을 꿈꾸기 어렵다면 이것만은 생각해 보면 한다.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무엇을 더 생기 있게 하고, 밋밋한 것은 더 입체감을 띠우고, 심장박동은 더 웅장하게 들리게 하면 어떠냐고.
그리고 이때야 말로 혁신의 리버브를 떠올릴 때다. 혁신을 더 혁신답게 하는 것, 그 숙성의 시간은 이것을 말한다. 이것은 당신이 원하지 않던 그런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