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13>다중우주론과 가상공간

[김장현의 테크와 사람]<13>다중우주론과 가상공간

자기 머리보다 큰 헤드셋을 착용하고 게임 전용 모니터를 뚫어지라 응시하며 그 어떤 동작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게임하고 있는 아이를 볼 때면 아이가 빠진 세상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물리적 세계보다 흡인력이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가 헤어 나오지 못하는 메타버스 공간은 치명적으로 매력적이고, 즐거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특화돼 있다. 그래서 아이는 학교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거의 매일 방문하는 메타버스라는 공간에 동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체물리학에서 다루는 다중우주론은 그동안 많은 영화와 소설에 영감을 제공했다. 우주의 시공간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으며, 한 우주와 다른 우주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한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이것은 아직 물리적으로 관측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우주다. 하지만 블랙홀을 관측해 내기까지 인류는 블랙홀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논쟁했지만 이제 블랙홀의 실재 여부로 논쟁하지는 않게 된 것처럼 우리가 사는 시공간과 평행하게 존재하는 다른 우주를 관측하는 일이 아직은 불가능하다 해서 그것을 마냥 상상의 소산으로 치부할 수 없다.

미국의 인기 영상물 '스타트렉'의 제임스 커크 선장 역을 한 91세의 노배우 윌리엄 섀트너가 우주 공간에 10여분 머물러 있던 경험을 소재로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물론 우주 경험 자체는 짧았지만 상당히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지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경외감이 우주 공간에서 심화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니 생명을 담고 있는 거대한 그릇인 지구와 적막한 어둠 속에서 잔인한 차가움을 뿜어내는 우주가 묘한 대비를 이뤘다고 했다. 여기서 느낀 감정은 차라리 장례식에서 느낄 수 있는 벅찬 슬픔에 가까웠다고 한다. 다중우주가 만약 실재한다고 밝혀진다 해도 꼭 축하의 탄성을 지를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동시에 존재하는 우주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느냐가 탄성과 비명을 가르는 기준선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중우주가 실재하느냐를 논하는 것보다 10대 때 스타크래프트에 빠졌다가 이제 자신의 아이가 메타버스에 빠져 있는 것을 보는 30~40대의 묘한 감정이 훨씬 더 절실한지도 모르겠다. 메타버스라는 인식론적 공간이 우리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하고, 우리를 생리적으로 더 빠르게 피로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극도의 기쁨과 좌절을 안김을 생각해 보면 이 두 공간은 분명히 연결돼 있고,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우주 공간을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섀트너는 슬픔을 느꼈지만 메타버스를 아이와 함께 경험하는 세대에게는 가상공간 역시 그에 못지않은 걱정과 환희를 동시에 안기는 것 같다. 여전히 제도권 학교의 교육은 우리에게 메타버스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충분히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기술 부적응, 문화 지체 속에서 우리 삶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가고, 우리 삶은 자유의지에 의해 구성되지 못하고 메타버스와 물리공간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상공간이라는 평행우주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이에 정치와 사회 영역은 급속히 반문명적인 폭력과 권위주의로 맹렬하게 채워지고 있으며, 그러한 힘들은 격렬하게 충돌하며 우리에게 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셜미디어로 중계되는 무고한 인명 살상의 비명을 들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메타버스로 들어가 모든 것을 잊고 '욕망에 탐닉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그 질문을 하고 싶었다. 다중우주가 실재하는지 밝혀내는 열정과 가상공간에서 어떻게 살아 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 공존하는, 우리 시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alohak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