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車부품업계 전동화 대전환, 열쇠는 '집단형 CVC'

황도연 오비고 대표.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황도연 오비고 대표.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유난히 맑은 가을 하늘과 100년 만에 볼 수 있다는 큰 보름달을 보면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석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으로 돌아온 중소 자동차 부품업계는 추석 때 맑은 가을 날씨와는 달리 태풍 전야와 같은 분위기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요즈음 자동차 업계 중소업체 대표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푸념이다.

차량 판매 대수가 코로나발 경기침체와 반도체부품 공급문제로 지난해 518만대까지 줄었다. 경기가 좋았던 2015년의 630만대에 비해 물량이 약 20% 급감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제품을 1000원어치 팔아 이익을 22원(이익률 2.2%) 남겨 은행 이자율만큼도 벌지 못하는 국내 자동차 부품회사가 36.6%나 된다. 특히 1.6% 이익률의 중소 자동차 부품업계가 참 어렵다.

자동차 부품업계의 고민은 매출과 이익률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전동화 전환은 더욱 암담한 현실이다. 미래차는 구동시스템, 배터리충전시스템, 공조시스템, 차체·섀시 플랫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전 분야에 걸쳐 기본부터 모든 것이 바뀐다. 하지만 전동화 전환이라는 딥체인지를 해결 방안 없이 고민만 한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그동안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워 가면서 수많은 어려운 도전을 이겨냈지만 미래차 기술 분야는 내부 인력으로 밤샘하는 근면성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바닥부터 모든 것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져들기만 한다.

예를 들어 차량용 램프회사의 경우를 보자. 자율주행차, 전기차에서 램프는 각종 자율주행센서와 통신하며 자율주행 데이터의 동적인 변화에 따라 실시간으로 상향등 또는 하향등으로 바뀌고, 램프 밝기를 조절하기도 하고 운전자에게 경고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자동차 램프 구동 전동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SW) 개발이 필요한 배경이다. 그러나 하드웨어(HW) 중심의 전통적인 자동차램프 회사에는 SW 개발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전동화 전환 SW 개발전략을 준비할 SW 기획자도 없다. 미래차·전동화 전환의 핵심인 SW 중심 사업전략, 제품개발전략, SW 개발자 등을 위한 내부 핵심 역량이 없는 상황이다. 이전에 문제를 해결해 온 것처럼 HW 중심 내부 인력과 함께 밤샘한다고 전동화 임베디드 SW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부품업계 대표들에게 전동화 전환을 위한 딥체인지가 풀리지 않는 오랜 숙제가 된 이유다.

전동화 전환을 위한 내부 핵심 역량이 부재인 상황에서 어떻게 전동화 전환 딥체인지를 실현해서 미래차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까. 그 해결 방안으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생각해 보았다.

CVC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일환으로, 기업 성장이 정체됐을 때 회사에 필요한 신사업 역량이나 제품 및 사업 등을 스타트업 투자에서 확보하는 방안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오픈이노베이션의 실행 방안으로 해외·국내 대기업 중심으로 실행돼 큰 성과를 보여 줬다.

CVC 대표 성공 사례로 구글벤처스(GV)가 자주 등장한다. 구글의 시작점인 지주회사 알파벳에서 CVC인 구글벤처스를 설립하고 펀드를 조성해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구글벤처스는 구글에 필요한 핵심 역량 확보, 신사업 전개 등으로 알파벳의 지속적인 성장에 기여했다.

구글벤처스는 2009년부터 2022년 초까지 988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투자한 회사 가운데 25개 기업이 상장에 성공했고, 125개 회사를 인수해서 스타트업이 갖고 있는 핵심 역량 및 사업을 내재화했다.

출처 : 전국경제인연합회
출처 : 전국경제인연합회

존 리너 하버드대 교수는 CVC에게 투자받은 스타트업 성과를 추적한 결과 전통적 벤처캐피탈(VC) 투자기업 대비 매출증가율, 자산수익률 주요 경영성과 지표에서 크게 앞선다며 연구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구글, 인텔, 시스코, 퀄컴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CVC 성과가 입증된 것이다.

이제 벤처투자 가운데 CVC 투자비중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20년 미국 전체 벤처투자 가운데 44%(46조원), 중국 전체 벤처 투자의 72.2%(19조2000억원)가 CVC 주도로 이뤄졌다. 국내에서도 삼성벤처투자, GS벤처스, CJ창업투자, 네이버벤처스, 카카오케이큐브벤처스 등에서 2020년 2조2000억원을 CVC로 투자했다. 국내 전체 벤처투자 4조3000억원 가운데에서 51% 비중을 차지, 해외와 비슷한 추세로 나타났다.

출처: 한국자동차연구소
출처: 한국자동차연구소

중소형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기업벤처캐피털을 활용하는 방안을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기존사업 강화형이다. 스타트업과 협력해 기존 사업의 차별화, 기술 돌파를 달성하는 전략이다. 둘째는 사업추진형이다. 스타트업이 개발한 제품을 기존 기업이 갖고 있는 양산 기술력, 제조, 영업망으로 사업화해서 신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세번째는 미래개척형이다. 아직 시장이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중장기 사업개발 또는 사업영역 확대를 위한 미래 준비 전략이다.

세 가지 전략 가운데에서 기존 사업 강화형과 사업 추진형이 전동화 전환, 자율주행차 대비하는 중소부품업계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이다. 미래 전망은 밝은데 당장 매출이 되는 시장이 시작되지 않아 요즈음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이 고전하고 있다. 반면에 자율주행 스타트업이 보유한 자율주행 핵심 기술과 SW 역량은 전통적 자동차 부품업계에는 오늘 당장 꼭 필요한 핵심 기술이고 역량이다. CVC가 이 둘 사이에 거리를 줄이고 협력할 모델이 될 수 있다.

출처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출처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미 성공모델로 입증된 CVC 모델을 어떻게 위기의 자동차 부품업계에 적용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중소업체 중심의 영세한 자동차 부품업계가 CVC를 도입하기에는 투자자금 확보와 벤처투자운용 전문인력 두 가지 큰 장벽이 있다. 단독기업이 CVC를 설립하는 건 쉽지 않다. 유사 업종이 모여 집단형 CVC를 구성한다면 정부 모태펀드 지원 등 펀드 투자금 유치가 상대적으로 쉽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벤처투자 운용인력 확보함에 용이할 것이다.

전동화 및 자율주행차로 대전환하기 위해서는 분야별 SW 역량은 필수다. 부족한 핵심기술과 역량을 CVC를 통한 오픈이노베이션으로 확보해 보자.

황도연 오비고 대표 david.hwang@obigo.com

<필자소개> 황도연 오비고 대표는 정보기술(IT), 자동차 SW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 관련 분야의 기술 연구개발 성과를 인정받아 2018년 국가연구개발 우수 성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았다. 같은 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한국판뉴딜 국정자문단 자문위원 등 산업 발전을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사 중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 비중(출처: 한국자동차연구원)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은 영업이익으로이자를 갚지 못하는 것을 의미

2021년 부품사와 완성차 업체 영업이익률(출처: 한국자동차연구원)

[ET시론]車부품업계 전동화 대전환, 열쇠는 '집단형 C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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