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카카오톡 '먹통'과 디지털 펀더멘털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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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인 15일 국민의 디지털 일상을 흔든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 플랫폼이라고 일컫는 카카오 서비스가 데이터센터 화재로 전부 마비됐다. 현재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인터넷은 핵전쟁에서도 통신이 가능할 수 있게 만들 의도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가 핵전쟁도 아니라 단지 배터리 1개 화재로 멈춰 섰다.

인터넷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국민 일상생활에 깊이 자리 잡은 인터넷상 필수 기반 서비스의 장시간 중단 사태는 그동안 믿고 의지한 우리 국민에게 충격과 함께 디지털 환경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배터리 화재 원인과 함께 서비스 복구가 늦어진 이유는 앞으로 조사 결과 자세하게 밝혀지겠지만 우선은 신속하고 완전한 서비스 복구와 함께 그에 의존해 온 수많은 사업자와 개인에 대한 적절한 피해 구제가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문제·위험 분석을 통해 체계적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이행해야 한다. 첫 출발점은 '디지털 펀더멘털(digital fundamental)'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디지털 대전환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지금 디지털 환경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디지털 펀더멘털은 디지털 생태계에 요구되는 성능을 충족하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나아가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방화·방재·보안·안전 등 디지털 환경을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기초체력 또는 필수요소로 정의할 수 있다.

디지털 펀더멘털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요소라는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 디지털 펀더멘털을 강화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화재나 천재지변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 안정적이고 끊김 없는 디지털 환경을 만들기 위한 예방·비상대응 체계 구축이다. 체계적인 시스템 구성, 실시간 백업이나 이중화, 온프레미스와 클라우드의 적절한 활용, 정기적·상시적 점검과 보수, 비상대응체계 구축과 정기적 점검·연습, 효과적인 거버넌스 구축 등을 실천해야 한다.

디지털 펀더멘털은 인터넷통신사업자(ISP), 데이터센터 또는 클라우드 사업자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공공기관을 포함하여 직접 서버를 구축·운영하거나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또는 클라우드 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디지털 서비스 제공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요구된다. 사업 규모나 이용자에 대한 안정적 서비스 제공 요구가 높아질수록 디지털 펀더멘털의 중요성도 커진다.

아무리 비상대응체계가 잘 갖춰졌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완비돼 있다 해도 결국 사람이 시의적절하게 운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비상사태 발생 시 아무런 오류 없이 페일오버가 자동 진행되면 좋겠지만 예측하지 못한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 서비스 제공을 위한 관리체계, 특히 컨트롤타워가 적절히 구성·운영된다면 스위치오버를 포함한 다양한 대응방안을 일원·체계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사실상 독점적 지위에 있는 플랫폼 서비스가 장시간 중단되는 초유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회, 정부, 언론 등이 모두 다양한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점적 플랫폼의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고 숙의할 기회를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게 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본질인 디지털 펀더멘털의 중요성은 간과하고 독점 사업자에 대한 규제만으로 논의가 축소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자체 데이터센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식의 일방향적 사고로 논의가 기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화재나 천재지변은 자체 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체 IDC를 구축하든 다른 사업자 센터를 이용하든 온프레미스나 클라우드 어느 쪽을 이용하든 서비스를 끊김 없이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구성을 찾아 구축·운영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디지털 펀더멘털은 디지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나 정부·공공기관 스스로가 책임 있는 자세로 자율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가 된 부가통신사업자는 기간통신사업자 대비 법적 의무가 강하게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이 요구하는 의무 수준과 별개로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에 있거나 실제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경우 등에는 국민 신뢰에 대응한 더욱 강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특히 민간 사업자가 디지털 서비스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익이 커질수록 그에 대응한 디지털 펀더멘털에 대한 투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공공 서비스를 대체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허용하는 때에도 정부는 국민에게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디지털 펀더멘털 기준을 설정, 사업자가 이를 충족하도록 요구하고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배터리를 대량으로 이용하는 데이터센터의 화재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진압하기 위한 연구개발(R&D)과 재난대응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국회는 과거 입법을 중단한 부가통신사업자를 국가 재난관리체계로 포함하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과 유사한 내용의 법안인 이른바 '디지털정전방지법'의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무엇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 규정된 부가통신사업자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 외에 추가로 어느 범위까지 재난에 대응한 의무를 부과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차분하고 정밀하게 선행돼야 한다. 국민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으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필수적인 디지털 서비스에 대해 제한적 범위에서 재난 대응을 위한 합리적 기준을 설정하고 의무를 부여하는 입법이 바람직하다.

그외 디지털 서비스에 대해서는 의무화보다 다양한 인센티브를 활용한 정책적 노력을 통해 디지털 펀더멘털 강화에 자발적 노력이 이뤄지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서비스 전체에 대한 법적 규제체계를 전면 재검토, 과거 기간통신과 부가통신 구분에 의존한 체계에서 탈피하고 디지털 서비스 역할과 기능, 사회·경제적 영향력 등을 종합 고려해서 새로운 패러다임 규제체계를 설정하는 방향으로 입법 논의를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기본은 안정적이고 끊김 없는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가 민·관을 연결해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번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디지털 펀더멘털을 바로세울 때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kjchoi@gachon.ac.kr

○최경진 교수는= 가천대 법학과 교수이자 인공지능(AI)·빅데이터 정책연구센터장이다. 우리나라 전자상거래·데이터 법 전문 연구자이자 ICT·미디어 분야에서도 연구 업적을 쌓은 법·정책 대표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 한국정보법학회 부회장,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정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표. 국내 데이터센터 지역별 분포 및 규모별 분류(자료: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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