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과학기술 패권시대 경쟁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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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식에서 국정 운영의 중심을 '과학, 기술, 혁신'에 두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과 혁신에 주목한 데는 4차 산업혁명 가속화와 글로벌 리딩 국가의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대외 환경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개방적인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자본·상품·인력이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이동하면서 기술혁신을 이룩했고, 그 결과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뒤로 하고 수출 7위 국가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 자본의 미국 첨단기술기업 인수합병을 규제하고 첨단 부문에서 미·중 간 인력 교류 제한,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강화 등의 조치를 실행하면서 경제안보 관점에서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기술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위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면서 국제관계에서 과학기술은 지정학을 뛰어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첨단기술 확보 경쟁은 경제적 측면을 넘어 국가의 생존과 외교·안보에 핵심이 되고 있다. 많은 이가 지금의 국제 정세를 논하면서 '기술 패권 경쟁'이라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대외 환경 변화에 맞물려 4차 산업혁명을 뒷받침하는 기술혁신 속도는 더욱 가속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경제·데이터 경제로의 이행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견인하는 신기술에 대한 세계 각국의 적극적인 투자가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선 반도체 산업 지원, 국립과학재단(NSF) 내 기술혁신국 설치 및 10대 핵심기술 육성 등을 포함한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 의회를 통과했다. 중국은 과학기술 자립 자강을 최우선 목표로 하여 7대 과학기술과 8대 산업 육성에 투자를 집중시키고 있다. 일본도 경제안보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특정 중요 기술의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 지원, 민관협의회 설치 등을 포함한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핵심 전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강도와 규모는 미국과 중국의 절박함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여전히 기술혁신이 과학기술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대전략 차원으로 확장되지 못하면서 혁신을 위한 추진 동력도 한계를 보이는 셈이다.

현재까지 대응만으로는 국가 안보에 필요한 전략기술을 체계적으로 육성·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민간이 중심이 되어 전략기술을 개발하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지원함으로써 전략기술을 신속하게 확보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를 위해 범부처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통합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술별로 명확한 임무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연구개발사업의 추진이 필요하다.

본 의원은 지난 8월 신속한 국가전략기술 개발·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지원 정책과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특례 근거를 마련했다. 전략기술 육성 기반 조성, 인력 양성, 국내외 협력 강화 등 견고한 추진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국가전략기술 선정·육성을 위한 국가 추진체계 구축 △신속·과감한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사업 추진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서는 성과관리와 성과 확산 촉진 △국가전략기술 분야 인력양성 강화와 기반 확충 △연구 정보보호·보안과 국제 협력 강화 등을 담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대한 우리 대응 전략의 핵심은 미·중 가운데 누구 편에 서야 하는지를 넘어 우리가 지속적으로 초격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선택과 집중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후를 내다보고 정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반도체 우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스트 반도체를 무엇으로 가져가야 하는지, 신기술의 가능성과 도전을 어떻게 반영해 나갈 것인지 등 정교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중국이 시장과 자본의 힘을 동원해서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반도체 산업의 사례만 보더라도 오직 초격차 기술만이 대한민국의 지정학적·국제관계학적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기술 선도국 간 기술을 공유하는 '기술블록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첨단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기술결속' 구도에서 소외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인력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2020년 주요국의 R&D 인력수는 중국 약 228만명, 미국 159만명(2019년), 일본 69만명, 독일 45만명, 한국 45만명 순이다.

국내 과학기술인력 수급전망
국내 과학기술인력 수급전망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인력의 수요·공급 격차 확대와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과학기술 분야의 중장기 인력 수급 문제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기술패권 경쟁과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연구인력 부족 인원이 2019∼2023년 800명에서 2024∼2028년 4만7000명으로 약 60배 증가를 내다봤다.

과학기술은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죽고 사는 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논의한 초격차 기술 확보를 통한 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에 준하는 과학기술인의 위상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선도 국가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시대 변화 요구에 맞는 창의 인재 양성 교육 프로그램이 뒤따라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전략기술 육성, 인재 양성, 과학기술인 위상 확보 등 3가지 축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이 기술패권 국가로 거듭날 그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영식 국민의힘 국회의원
김영식 국민의힘 국회의원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yeungshik20@naver.com

<필자> 김영식 의원= 영남대를 나와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금오공대 기계공학부 교수, 6대 금오공대 총장을 역임했다. 21대 국회부터 의원 활동을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국가 과학기술 및 ICT, 디지털, 원자력 분야 육성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미래일자리특위, 반도체특위, 탈원전피해특위에 참여하면서 과학기술 기반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모범적인 의정 활동에 힘입어 전자신문과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가 신설한 제1회 '지식과 혁신 의정대상'을 수상했다